[e노블리안스]박중현/노동운동 바꾼 ‘외국인’

  • 입력 2004년 8월 15일 18시 01분


한미은행 파업, 지하철노조 파업, LG칼텍스정유 파업 등으로 뜨거웠던 노동계의 ‘하투(夏鬪)’도 유난히 더웠던 올여름처럼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올해 하투를 점검하면서 노사관계에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평가합니다. 주된 원인으로는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과 좋은 조건을 보장받는 기업이 파업을 해 여론의 비판이 거세졌다는 점을 꼽습니다.

그러나 저는 올해 파업의 양상을 가장 크게 바꾼 배경에 ‘외국인’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들어 외국 투자기관과 외국기업 관계자들은 한국에 투자를 꺼리는 대표적 이유로 노사문제를 지목했습니다.

이 같은 외국인의 시각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 미국 칼텍스가 지분의 50%를 갖고 있는 LG칼텍스정유와 씨티그룹이 인수한 한미은행의 파업이었습니다.

두 기업의 파업에서 노조가 직접 대면한 것은 한국인 경영자였지만 실제 그들의 상대는 외국인 투자가였습니다.

이들 외국인 투자자는 노조가 다소 과격한 행동을 해도 적당히 타협하거나 파업기간 중 받지 못한 보수를 위로금 등으로 지급하며 노조를 달래 온 한국의 기업주들과 다릅니다.

이들은 “다른 나라에서 통하는 기준은 한국에서도 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융통성 없는 외국인 주주’ 때문에 다른 회사의 파업과 달리 장기화될 수밖에 없었고 노조는 원하는 것을 거의 얻지 못했습니다.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라는 베스트셀러를 낸 뉴욕타임스 기자 토머스 프리드먼은 세계화의 특징을 ‘황금 구속복’이라는 용어로 요약합니다. 경제적으로 선진국을 따라잡고 싶은 나라라면 개방의 물결 속에서 피치 못하게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구속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기업에 대한 외국인들의 지분이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의 노동계, 특히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대기업 노조는 점점 더 황금 구속복을 입을 것인지, 아니면 ‘피해는 크지만 큰 성과는 기대하기 힘든’ 극한대립을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할 상황에 몰리고 있습니다.

박중현 경제부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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