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외무고시에 합격해 8년간 외무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외교안보연구원 연수과정을 수석으로 마치고 북미국등 외교부 내의 핵심 부서를 두루 거쳤습니다.
그가 외교관의 꿈을 접고 농림부로 자리를 옮긴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의 말을 풀어서 유추하자면 농업과 농촌의 소중함과 미래에 대해 누구보다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973년 경기 연천군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96년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원예학과를 졸업했습니다.
같은 과 동기인 그의 부인 문지혜(文芝惠·31)씨도 농촌진흥청 연구사로 재직 중입니다.
한국 농업에 자신의 젊음을 걸겠다는 그의 신념은 대학 시절 목격한 한국 농업의 처참한 현실 속에서 무너지고 맙니다.
“대학을 다닐 때 우루과이 라운드가 타결됐어요. 우리 농업에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대학 입학 때 품었던 꿈을 접고 외무고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23세의 나이에 대학 졸업과 동시에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교관의 길을 걸었지만 농업에 대한 미련을 쉽게 버릴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통상전문성을 살려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나 쌀 협상 등 국가적인 중대사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가 보는 농업과 농촌은 낙후되고 어두운 곳만은 아닙니다. 농업과 농촌은 생명의 근원이자 삶의 양식으로 미래 사회에 더욱 각광을 받을 분야라고 얘기합니다. ‘휴먼바이오산업’으로 첨단 산업의 반열에 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취재를 마치고 나서 한국 농업이 결코 어둡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때의 좌절과 현실의 달콤함에 안주하지 않고 한국 농업을 위해 과감히 ‘U턴’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젊은 ‘벤처 공무원’이 있으니까요.
박용 경제부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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