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장관 집무실을 찾은 시간은 저녁 6시. 그는 국회의원들이 추곡수매제 폐지에 대해 토론하는 장면을 생중계로 보고 있더군요.
한 의원이 “추곡수매제가 없어지면 쌀농사를 못 짓게 된다”는 식으로 말하자 박 장관이 발끈했습니다. “저 분도 나처럼 농사 지어본 사람인데 현실과 동떨어진 말을 하는 것 같아.”
농민 출신 장관 입에서 나온 ‘반(反)농민적’ 발언에 잠시 놀랐습니다.
그러나 이런 반응은 당연하다는 게 농림부의 설명입니다. 법안 통과가 무산되면 수입쌀 시판에 따른 대책 마련에 차질이 빚어진다는 거죠.
최근 이익단체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법적 절차를 거친 사업을 무효로 돌리라며 투쟁하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박 장관의 입각으로 한국은 이익단체 출신 인사가 공직에서 얼마나 중립적일 수 있는지 시험할 기회를 갖게 됐습니다.
그는 장관이 된 뒤 환경단체 주장에 맞서 새만금 간척지 공사 강행 의지를 밝혔고 농민단체 항의를 무릅쓰고 추곡수매제 폐지에 적극 나섰습니다. 중립성을 둘러싼 당초의 우려는 어느 정도 가신 셈이죠. 그러나 그의 앞날은 여전히 ‘가시밭길’입니다. 세계무역기구(WTO) 쌀 협상 결과에 대한 국회 비준과 새만금 간척지의 경제성 확보 등 풀어야 할 숙제가 너무 많기 때문이죠.
제가 장관 방을 나올 때 한 농민단체 대표가 장관과 면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장관은 그를 아주 반갑게 맞더군요. 농림부 수장(首長)의 방문턱이 낮아진 건 좋은 일입니다. 다만 왼쪽에 있는 국민의 의견을 들었다면 오른쪽에 있는 국민의 의견도 들어야 중립적인 정책이 가능할 것이란 생각도 들더군요.
10분쯤 뒤 박 장관이 급히 나왔습니다. “이대로 두면 법안 통과가 힘들겠어. 내가 국회의원들을 직접 만나야지. 홍 기자, 다음에 봅시다.”
박 장관이 전체 국익을 먼저 생각하면서 ‘중립적 장관’의 모습을 잃지 않기를 기대합니다.
홍수용 경제부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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