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해봅시다]이용경 KT사장 vs 배순훈 KAIST 교수

  • 입력 2002년 9월 22일 18시 00분


한국 '테크노CEO' 인맥을 대표하는 배순훈 교수(왼쪽)와 이용경 사장. - 원대연기자
한국 '테크노CEO' 인맥을 대표하는 배순훈 교수(왼쪽)와 이용경 사장. - 원대연기자
“민영화로 KT(옛 한국통신)의 회사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어요. ‘가입자, 민원, 대리점’이란 용어를 없앴습니다. 대신 ‘고객, 고객불만, 지사’란 말을 쓰지요. 용어부터 고객위주로 바꾼 겁니다. 회사가 도전의식을 요구하면서 직원들의 눈빛부터 달라졌어요. 그러나 민간기업이 됐다 해도 아직 갈 길이 멉니다.”(이용경·李容璟 KT 사장·59)

“제가 즉석 컨설팅을 해드려도 될까요. KT는 과거에도 잘 나가는 공기업이었지만 이제부터는 민간의 창의성을 살려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해야 합니다. 그래서 혁신이 필요한 것이죠. 앞으로는 더욱 생산적인 서비스로 부가가치를 높여야 해요. 또 KT가 민영화됐지만 시장지배적 업체로서 농어촌처럼 수익성이 낮은 지역에도 첨단서비스를 제공해 공익에 기여해야 합니다.”(배순훈·裵洵勳 한국과학기술원 초빙교수·59)

민영화된 KT의 초대사장인 이용경 사장과 ‘탱크주의 CEO’로 더 유명한 배순훈 전 정보통신부 장관. 정보기술(IT) 분야의 테크노CEO 인맥을 대표하는 두 사람이 모처럼 반갑게 만났다.

배 전 장관은 현재 한국과학기술원 테크노경영대학원에서 초빙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젊은 학생들과 자주 어울려서인지 그 사이 더 젊어졌네요.”(이 사장)

“환갑을 앞둔 사람이 그렇게 정력적으로 일해도 괜찮은 건가요?”(배 교수)

이 사장과 배 교수는 경기고 서울대 동창으로 40년 이상을 허물없이 지내온 사이. 공대를 나와 미국 명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국내 대기업의 전문경영인으로 활약해 온 이력도 비슷하다.

동갑이지만 이 사장이 초등학교 때 월반을 해 고교와 대학은 배 교수의 1년 선배. 이들은 “동갑에 같이 늙어 가는 처지라 친구처럼 지낸다”고 말했다.

1990년대 초반 대우전자 사장이었던 배 교수가 ‘고장 안 나는 제품’이라는 차별화 전략으로 ‘탱크주의’ 열풍을 불러온 것은 전설로 남아 있다. 정통부 장관을 지내던 98년에는 비대칭디지털가입자회선(ADSL) 상용화를 지원해 한국이 초고속인터넷 강국으로 도약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지금 그 과실을 맛보는 곳이 이 사장의 KT다.

“KT가 먼저 뛰어든 ADSL사업이 성공하자 벤치마킹하겠다는 외국기업들이 줄을 서고 있어요. 차세대 네트워크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니까 이번에는 세계적인 장비 및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서로 참여시켜 달라고 합니다.” (이 사장)

글로벌전자상거래비즈니스포럼(GBDe) 의장, 유엔정보통신위원회(UNICT) 위원으로 활약하면서 IT 분야 국제 명사가 된 이 사장은 “글로벌화는 한국 기업이 안고 있는 숙제지만 어려운 일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배 교수도 “품질이 좋은 물건을 만들면 세계 각국에서 몰려들 수밖에 없다. 글로벌화는 알고 보면 쉬운 일”이라며 한 수 거들었다.

KT는 요즘 휴대전화에 밀려 유선부문 매출이 갈수록 줄어 고민에 빠져 있다.

이 사장은 “이윤이 낮으면 투자가 위축되고 서비스 질도 떨어지는데 유선전화사업의 적자폭이 늘고 있다”며 “요금 조정이 절실하지만 소비자들이 얼마나 이해해 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배 교수가 “기업과 소비자간의 대화로 신뢰가 생기면 이 같은 문제도 해결된다”며 옛 경험을 소개했다.

“TV를 파는데 애프터서비스에 드는 비용이 물건을 만드는 값의 두 배나 되는 게 문제였어요. 애프터서비스는 2시간 안에 해결하고 제품도 튼튼하게 만들 테니 값을 올리는 것은 이해해 달라고 솔직히 밝혔죠. 그랬더니 먹히더라고요.”

이 사장이 기업용 인터넷서비스와 홈네트워킹 등 신규사업에 대한 투자계획을 설명하면서 이야기의 주제도 IT산업 활성화로 흘렀다.

“세계적으로 IT산업이 침체라지만 KT는 올해 말까지 2조원을 투자합니다. IT시장 활성화를 위해 비교적 호황을 누리는 통신분야에서라도 투자를 활발히 해야 해요.”

이어 그는 “IT시장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생명공학기술(BT), 나노기술(NT) 등 분야에 눈을 돌리는 해외시장의 흐름도 주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때 벤처기업에도 관여했던 배 교수도 “IT시장이 침체라지만 몇몇 기업은 여전히 잘하고 있다”며 “IT산업에는 한국의 미래가 달려 있으므로 IT에 대한 투자는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테크노CEO 인맥의 원로로 꼽히는 두 사람은 이공계 인력부족 현상에 대해 함께 우려했다.

배 교수는 공학박사인 자신이 대학원에서 경영학(재무)을 가르치고 있다며 “이공계 교육을 받은 사람에게도 재무나 경영업무를 자연스럽게 맡기는 풍토가 정착되면 청소년의 이공계 기피현상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장도 “기술이 산업계 지도를 바꾸는 세상에서는 기술을 잘 알아야 시장 변화도 빨리 예측할 수 있다”며 말을 보탰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엔지니어 출신 CEO로서 걸어온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을까.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하고 물었다.

“아직도 앞날이 창창한데 웬 ‘경로 우대성 질문’이냐”며 농담으로 받는 두 사람. 이들은 “다시 돌아가도 역시 같은 길을 택했을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김태한기자 freewill@donga.com

이용경 사장

■이용경 사장

△1943년 경기 안양 출생

△64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75년 미국 UC버클리대 전자공학박사

△75∼77년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조교수

△77∼91년 엑슨, AT&T벨연구소 연구원

△91년 한국통신(현 KT) 입사

△2000년 KTF 사장

△2002년∼현재 KT 사장

배순훈 교수

■배순훈 교수

△1943년 서울 출생

△65년 서울대 기계공학과 졸업

△70년 미국 MIT대 기계공학박사

△74∼76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82년 대우전자 사장

△85∼95년 대우기전공업, 대우車부품, 대우조선, 대우전자 사장

△98년 정보통신부장관

△99년∼현재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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