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해 봅시다]P&G코리아 사장 VS 아그파코리아 사장

  • 입력 2002년 10월 20일 19시 00분


한국배우기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온 앨 라즈와니 프록터&갬블(P&G)코리아 사장(왼쪽)과 마티아스 아이히혼 아그파코리아 사장이 서울 중구 필동 ‘한국의 집’내 전통가옥 처마 밑에서 활짝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국배우기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온 앨 라즈와니 프록터&갬블(P&G)코리아 사장(왼쪽)과 마티아스 아이히혼 아그파코리아 사장이 서울 중구 필동 ‘한국의 집’내 전통가옥 처마 밑에서 활짝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울 중구 필동 ‘한국의 집’.

검붉은 기와가 곱게 내려앉은 전통가옥 앞에 프록터&갬블(P&G)코리아 앨 라즈와니 사장과 아그파코리아 마티아스 아이히혼 사장이 마주했다.

한국에 진출한 대표적인 다국적기업 사장들로 ‘한국에서는 한국식을 따라야 한다’며 현지화에 앞장서온 주인공들이다.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들에게 한국은 사업하기 어려운 곳은 아닐까.

아이히혼 사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어렵다기보다는 다르다고 말하고 싶어요. 한국은 새로운 기술을 빨리 받아들이고 항상 앞서가는 곳입니다. 외국기업에게 상당히 매력적인 곳이지요. 1997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해지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우리는 지금 고객의 주문을 오전 11시에 받고 당일에 배달을 완료합니다. 심지어 어떤 고객사는 오후 2시에 주문을 내면서 당일에 배달을 해달라고 합니다. 유럽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일입니다.”

라즈와니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미국이나 유럽의 비즈니스 환경이 ‘계약’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면 한국은 ‘신뢰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거래조건만 맞으면 계약을 맺고 거래를 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서로 신뢰를 쌓은 뒤에야 거래를 시작합니다.”

이 회사 직제표에서 라즈와니 사장의 이름은 맨 밑에 적혀 있다. 2000년 7월 한국에 부임하면서 그가 요구해 바꾼 것이다. ‘최고경영자는 회사가 잘 돌아가도록 직원들을 도와줄 뿐 윗사람으로 군림해서는 안 된다’게 그의 소신이다.

라즈와니 사장이 말을 이어갔다. “한국의 기업들은 위계질서가 너무 강한 것 같습니다. 거래하는 기업들끼리 만날 때 사장은 사장과, 부장은 부장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직급이든 해당 업무를 가장 잘 아는 사람과 만나 얘기하면 될텐데요.”

아이히혼 사장은 한국 요리 만드는 것을 즐긴다. 얼마 전에는 부인과 함께 시장에서 재료를 사다가 요리책을 보며 김치담그기에 도전했다.

라즈와니 사장은 부인과 함께 전국을 여행하며 한국의 전통음식을 맛보는 일로 주말을 보낸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가는 단골식당이 있을 정도이고 보신탕도 곧잘 즐긴다.

두 사람이 이처럼 ‘현지화’를 위해 남다른 노력을 하고 있는 건 무엇 때문일까.

“미국, 유럽과 한국은 사뭇 다른 곳입니. 그만큼 경영 스타일도 달라야 합니다. 글로벌 프랙티스(Global practice)와 로컬 프랙티스(Local practice)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지요. 한국을 배우지 않고는 한국 사람을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지 못하면 고객의 니즈(Needs)를 만족시키지 못합니다.”(아이히혼 사장)

“P&G는 특히 소비재를 다루는 회사이기 때문에 현지 소비자들의 요구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세계 140개국에 진출해 있는데 각 나라마다 다른 경영방식을 추구합니다. 현지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시장을 뚫을 수 없다는 게 본사 경영진의 생각입니다.”(라즈와니 사장)

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반찬을 집는 두 사람의 젓가락질이 한국사람 만큼이나 능숙했다.

두 사람은 한국법인에 파견된 외국인 직원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외국기업들 사이에서는 지금 ‘경영의 현지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P&G의 경우 3년전에 23명이었던 외국인 직원의 수가 현재 6명으로 줄었으며 내년에는 3명으로 줄어든다. 아그파도 5년전에 5명의 외국인 임원이 나와 있었는데 지금은 2명으로 줄었고 내년에는 아이히혼 사장 혼자 남는다고 한다.

대화의 주제는 한국의 비즈니스 환경으로 옮겨갔다.

“밖에서 보면 한국은 노사관계가 어렵고 정부 규제가 심하고 투명성이 떨어지는 곳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와서 일해보면 많이 다르지요. 노조문제만 보더라도 한국에 오기 전에는 근로자의 80%가 노조에 가입해 있다고 들었지만 실제로는 15% 정도에 불과했습니다.”(라즈와니 사장)

“외국에서는 한국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잘 모르기 때문에 CNN에서 보는 학생과 노조의 시위, 비무장지대(DMZ) 등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죠. 하지만 막상 와보면 외국인 투자에 대해 매우 호의적이고 외국기업의 사업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나는 다른 나라에 근무하는 동료들에게 한국에 오는 것을 적극 권합니다.”

그래도 한국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

라즈와니 사장은 “한국 사람들은 일과 가정 사이의 균형이 없이 너무 일에만 몰두한다”며 인생을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어느 한국인 CEO로부터 22년간 휴가를 가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고서는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고.

아이히혼 사장은 경직된 조직문화를 꼬집었다.

“한국에서는 상사와 부하직원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논쟁을 벌이는 것을 거의 볼 수 없습니다. 그렇게 조직문화가 경직돼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기 힘들죠. 회사 분위기를 조금 자유롭게 바꾸어야 한다고 봅니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앨 라즈와니(Al Rajwani) 사장

△1958년 탄자니아 출생(국적 미국)

△1981년 캐나다 캘거리대학 화학공학과 졸업

△1981년 미국 P&G 입사

△1995년 본사 화장지 브랜드 매니저

△1997년 본사 마케팅 이사

△1999년 대만 화장지사업본부 사장

△2000년 P&G코리아 사장

마티아스 아이히혼(Mathias Eichhorn) 사장

△1961년 독일 출생

△1990년 독일 요한 볼프강 괴테대학 화학 박사

△1990년 독일 훽스트 R&D 프로젝트 매니저

△1996년 독일 아그파-게바트 R&D 프로젝트 매니저

△1997년 한국아그파산업(생산담당 법인) 공장장

△2001년 아그파코리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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