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값이 계속 오른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리더군요.”
한 학장이 메모리 시세를 화제로 꺼내면서 화기애애한 대화가 시작됐다. 두 사람은 서울대 전기공학과 동문으로 한 학장이 황 사장의 4년 선배다.
“그렇습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분야의 기술주도권도 쥐고 있어서 메모리 값이 오르면 다른 어떤 기업보다도 유리합니다.” (황 사장)
“대학으로서는 반도체 경기가 크게 살아나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반도체 호황으로 전체 경기가 살면 학생들의 취업 기회도 늘어날 것이란 생각에서죠.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졸업 후 일할 직장이 없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 학장)
황 사장이 ‘황(黃)의 법칙’으로도 유명한 자신의 ‘메모리 신성장론’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메모리 수요가 계속 늘어 1년마다 메모리 용량이 갑절로 늘어난다는 내용.
“디지털 융합시대를 맞아 메모리 수요는 앞으로 계속 늘어납니다. 지금까지 PC 분야에 한정됐던 메모리 수요가 휴대전화, MP3 플레이어, 캠코더, 게임기, 개인휴대단말기(PDA) 등 다양한 디지털제품 분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죠. 지금 보이는 메모리 수요 증가 현상은 예고편에 불과합니다.”
이에 대해 한 학장은 “1980년대만 해도 단순 생산에 그쳤던 한국의 메모리산업이 세계 시장을 주도하게 된 것은 대단한 일”이라며 “앞으로 시장을 계속 선도하려면 창의적이고 우수한 인재를 많이 길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산업현장의 이 같은 요구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의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게 현실. 한 학장은 “몇 해 전 자연계 수석을 한 학생이 다른 대학 한의대로 간다고 해 밤새 설득했지만 막지 못했다”며 “젊은 세대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은 국가의 장래를 위협하는 매우 심각한 일”이라고 말했다.
황 사장도 “메모리 산업의 제2 도약에는 젊은 세대의 소프트한 아이디어가 무엇보다 필요하다”며 “이공계 지망자가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사회적인 인식과 보상체계가 달라져야 한다”고 걱정했다. 황 사장은 의대에 가려다 공대로 진로를 바꾼 자신을 예로 들면서 “이공계에는 다른 전공분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전문성과 다양성이 공존하는 매력이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한 학장은 입시제도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그는 “수학과 물리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 학생이라도 다른 과목을 못하면 대학에 갈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학생들에게 창의성과 도전의식을 심어 주는 입시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은 기술기업이 많이 생겨야 이공계 출신 엔지니어들에 대한 처우와 사회적 인식이 좋아질 것이라는 처방도 함께 제시했다.
“대학원생 면담에서 한 학생이 대뜸 장래 목표는 황창규 같은 최고경영장(CEO)가 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각 기업에서 활약하는 이공계 출신 CEO들이 자꾸 늘어나는 것은 자랑스럽고 반가운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성공한 이공계 CEO들이 문과쪽 CEO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 수준을 공개하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황 사장은 연봉이 30억원 이상이라고 했던가요?” (웃음)
그러나 황 사장은 연봉 수준을 밝히기가 부담스러운 모습. 황급히 얼마 전 자신이 강사로 나선 반도체 특강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지난 번 특강 때 학생들이 보여 준 열의에 깜짝 놀랐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기술에 대한 이해도나 전문성이 매우 높더군요.”
서울대 공대 반도체 소자특강은 삼성전자의 전문가들이 강사로 참여하는 대학원 정식 과목. 황 사장이 강사로 나선 올 가을 학기 첫 강의에는 수강 정원 50명의 3배나 되는 150여명의 청강생이 몰렸다. 한 학장은 “매학기 외부 인사 초청 특강이 5∼7개 정도 되지만 삼성전자 실무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반도체 소자특강이 가장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한국이 경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방안으로 똑같은 해답을 내놓았다.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 확대와 핵심 기술인력 양성이 그것.
황 사장이 “한국 기업의 R&D 투자가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취약하다”고 지적하자 한 학장은 “메모리와 통신 분야에서 비교적 활발한 R&D 투자가 산업 전 분야로 확산돼야 한다”고 화답했다. 이들은 또 국가와 기업이 핵심 기술인력을 적극 양성해야 글로벌 경쟁에서 앞서 나갈 수 있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김태한기자 freewill@donga.com
▼한민구 교수▼
△1948년 서울 출생
△71년 서울대 전기공학과 졸업
△75년 미국 미시간대 전기공학 석사
△79년 미국 존스홉킨스대 전자공학 박사
△79년 미국 뉴욕주립대 조교수
△84년 서울대 공대 전기공학부 교수
△99년 한국학술진흥재단 사무총장,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정책전문위원
△2002년 서울대 공대학장
▼황창규 사장▼
△1953년 부산 출생
△76년 서울대 전기공학과 졸업
△85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전자공학 박사
△85년 미국 스탠퍼드대 전기공학과 책임연구원, 인텔사 자문역
△89년 삼성전자 16메가D램 소자개발팀장
△92년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이사
△94년 세계 최초 256메가D램 개발 성공
△2001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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