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해 봅시다]동원F&B박인구 vs 만도공조 황한규

  • 입력 2002년 11월 17일 18시 22분


김치냉장고 ‘딤채’와 동원김치 공동마케팅을 펼쳐온 만도공조 황한규 사장(왼쪽)과 동원F&B 박인구 사장이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만나 김치산업의 미래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안철민기자
김치냉장고 ‘딤채’와 동원김치 공동마케팅을 펼쳐온 만도공조 황한규 사장(왼쪽)과 동원F&B 박인구 사장이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만나 김치산업의 미래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안철민기자
《“제일 맛있는 김치요? 고객들이 맛있다고 생각하는 김치죠. 나는 우리회사에서 만드는 김치만 먹어요. 김장이 막 끝난 생김치를 가장 좋아했는데 이제는 포장김치를 김치냉장고에서 발효시켜 먹습니다.”(박인구 동원F&B 사장)

“난 집사람이 해주는 김치가 제일 맛있더라고요. 김치 없으면 밥을 못 먹어요. 밥상에 항상 서너가지 종류의 김치는 같이 꺼내놓고 먹는다니까. 고온보다 저온숙성된 게 맛있지….”(황한규 만도공조 사장)

지긋한 나이에 날이 선 와이셔츠 칼라, 품위있는 정장 차림. 그러나 두 사람의 머릿속에는 항상 시뻘겋고 매콤짭짤한 김치 생각이 가득하다. 김장철인 요즘은 주부들보다도 더 분주하다고 했다. 김치냉장고 딤채 생산업체인 만도공조 황한규(黃翰奎·55) 사장과 동원김치를 만들어온 동원 F&B 박인구(朴仁求·56) 사장이 만났다.》

수년간 공동마케팅을 벌이며 자주 연락을 해왔다는 두 사람은 자리에 앉자마자 이런저런 ‘김치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우리는 사실 딤채가 처음 나왔을 때 걱정을 많이 했어요. 김치라는 것이 빨리 쉬어져서 못 쓰게 돼야 소비자들이 또 살 텐데 장기 보관할 수 있게 되면 어쩌나 싶었죠.(웃음) 그런데 오히려 상품 김치의 신뢰성이 높아지고 5㎏ 이상의 대용량 김치가 팔려나가기 시작하더군요.”(박 사장)

“확실히 시너지 효과가 있어요. 김치냉장고에는 숙성기능 외에 보관 기능이 있으니까 박 사장이 그런 걱정을 안해도 되죠. 한 설문조사를 보니까 김치를 직접 담는 사람이 30%가 안 되더군요. 일하는 여성들이 많아지면 김치는 결국 사 먹게 될 겁니다.”(황 사장)

제휴를 맺고 김치냉장고와 김치를 붙이는 새로운 판매전략을 시도한 것은 두 회사가 처음. 이들은 각자 운영하는 김치연구소 자료도 상당 부분 공유한다. 최근에는 김치 맛을 내는 성분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표준화하는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어느 미생물이 신선도를 유지하고 어느 정도 분량이 들어있어야 사각거리는 느낌이 가장 많이 드는지 등을 찾아내는 연구다.

“가장 잘 숙성된 맛을 찾아내려고 김치도 엄청나게 먹었어요. 김치 맛있다는 집은 여기저기 다 찾아다녔죠. 식품사업을 하려면 맛에 아주 세밀하고 민감해져야 합니다. 외모는 그렇지 않은데, 허허….”(박 사장)

“사실 사람 맛이라는 게 천차만별이지 않습니까. 난 지금도 라면 먹으면서 주부사원들하고 시식을 해보는데 먹을 때마다 맛이 달라져요. 맛은 감성이거든요. 날씨에 따라 달라지고 몸 컨디션이나 나이에 따라서도 또 달라지는 게 맛이에요. 이걸 어떻게 표준화하느냐 하는 게 제일 어려워요.”(황 사장)

김치를 냄새나는 ‘촌스러운’ 식품이라고 코를 싸쥐고 놀리던 과거는 옛말. 두 사람은 이를 당당한 한국의 대표 식품이자 성공적인 식품사업 모델로 끌어올려 놓았다. 황 사장이 문득 “해보고 싶은 연구가 있다”며 운을 떼자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김치의 경제학’으로까지 흘러갔다.

“연구 주제는 ‘김치냉장고가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에요. 우선 김치냉장고를 쓰면 쉬어서 버리는 김치가 없어집니다. 또 날씨 하나에만 의존하던 과거와 달리 수요, 공급물량을 미리 예측할 수 있게 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김치 맛이 좋아지면서 식문화가 향상됐죠. 이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돈으로도 계산할 수 없는 경제적 가치입니다. 맛과 감성에서 부가가치를 찾아 경제에 기여하는 것입니다.”(황 사장)

“나도 식품을 단순한 장사로 여기고 있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에는 코카콜라, 맥도널드 등 유명한 식품업체가 많은데 우리나라는 없지 않습니까. 김치 사업은 일종의 사명감을 갖고 하는 겁니다.”(박 사장)

두 사람이 보는 미래 사업전망은 밝다.

박 사장은 “앞으로 김치를 집에서 담그는 사람은 거의 없어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또 한국인들의 입맛이 서양화되는 것 이상으로 서양인들이 동양적인 맛을 찾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김치 시장은 더 커진다는 것.

황 사장도 “시장이 포화되면 와인냉장고나 치즈냉장고 같은 새로운 상품을 계속 개발하면 된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사업 이야기가 나오니 황 사장이 재미있는 사업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요즘 정수기 하나 팔면 지속적으로 필터 갈아주면서 고객 관리를 하잖아요. 우리도 딤채를 팔고 나면 정기적으로 동원김치 채워주면서 고객과의 관계를 유지하면 어때요?”

박장대소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박 사장. “그러니까 김치가 일종의 ‘필터’가 되는 거군요. 내가 지난 번 딤채 대여사업을 제안한 것과 비슷하네요.”

점점 김치 생각이 간절해지는 것을 보니 어느새 저녁식사 시간. 입맛을 다시는 기자에게 두 사람은 “김치를 많이 먹으면 예뻐진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황한규 만도공조 사장▼

△1947년 서울 출생

△보성고, 성균관대 경제학과

△77년 한라해운 입사

△95년 만도기계 아산사업본부장

△98년 만도기계 한라그룹 정상화 추진실장

△99년 만도공조 대표

▼박인구 동원F&B 사장▼

△1946년 광주(光州) 출생

△조선대부속고, 조선대 법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21회 행정고시 합격

△84년 미국 주재 상무관

△97년 상공부 부이사관

△97년 동원정밀 대표

△2000년 동원F&B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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