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봤지요,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드래곤볼’이 더 감동적이던걸요.”
지난해 게임업계 사상 최대 규모인 매출액 1548억원과 순이익 531억1300만원을 기록한 엔씨소프트의 김택진(金澤辰) 사장. 그리고 온라인 게임과 인간행동 심리 연구로 명성을 쌓고 있는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黃相旻) 교수는 만나자마자 뜬금없이 만화를 화제로 삼았다.
‘실없이 왜들 이러시나’ 했더니, 두 사람은 만화 이야기를 길게 했다.》
“게임을 개발할 때는 ‘맛의 달인’, 서비스 시작 이후에는 ‘드래곤볼’에 더 감정이입이 되는 것 같아요.”
“‘맛의 달인’을 보면 사물을 이렇게 깊고 다양하게 볼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게 사실이죠. 불특정 다수를 만족시켜야 하는 게임의 개발은 ‘맛의 달인’ 속에서 주인공이 맛을 완성해 가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일단 게임이 개발된 뒤에는 손오공이 ‘전투력’을 쌓아 가듯이 게임을 계속 업그레이드해야만 강해질 수 있어요.”
정말 만화에서 얻은 교훈으로 오늘날의 엔씨소프트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RPG) ‘리니지’가 올해로 서비스 시작 5년을 맞았다. 게임 속 시간(4시간이 하루)으로 계산하면 30년, 한 세대가 지났고 ‘업계 사상 최대 매출’을 덤으로 얻었으나 아이템 현금거래 ,폭력성 등 리니지를 둘러싼 잡음은 가시지 않고 있다.
▽김=리니지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그 안에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저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게임인 것 같지만 그 안에서 생성되는 네트워크를 보면 매우 사실적입니다. ‘군주’를 중심으로 세력이 형성되고, 공동으로 전투를 할 때는 군주들끼리 모여 또 다른 우두머리를 만들어 냅니다. 어느 집단이든 리더가 있어야 그 집단이 발전한다는 얘기는 온라인 게임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황=리니지 속 사회는 ‘앤트 콜로니(Ant Colony·개미집단)’와 비슷합니다. 집단이 형성되면 그 안에서 관계를 만들고 서열이 정해지지요. 그런 의미에서 리니지는 게임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생명현상’에 가깝습니다.
▽김=얼마전 리니지에서 한 사용자가 ‘나는 팔을 잘못 쓰는 장애인’이라고 주위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한 사람이 장애인 사용자를 더욱 괴롭혔는데, 이 사실이 다른 게이머들에게 알려지면서 리니지가 발칵 뒤집어진 적이 있습니다. 결국 엄청난 수의 사용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장애인을 괴롭힌 사람의 게임 접속을 일정기간 차단했습니다.
▽황=그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조물주가 세상을 만든 후 인간사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자연에, 자율에 맡겨야지요.
▽김=그때 상황은 샤머니즘과도 비슷했습니다. ‘인간’들의 강한 의지로 잠시 ‘신’을 불러 내린 것이지요. 월드컵 열기, 촛불 시위 같은 일들을 보면서 기성세대는 “세상 많이 바뀌었다”고 얘기하지만, 리니지 운영자 입장에서 저는 전혀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런 정서는 이미 한국 사람 몸에 배어 있었고, 리니지에서 그 같은 현상은 수도 없이 목격했습니다.
▽황=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치행위’는 조심스럽게 이뤄져야 합니다. 시장과 자연에 맡겨두면 저절로 될 일도 통치자가 잘 못 건드리면 덧나는 수가 있습니다. 그게 자연입니다.
▽김=그런 의미에서 아이템 거래도 저희는 사실 조심스럽습니다.
▽황=화면 속의 장신구나 마법의 약 등을 돈주고 사는 게 지금은 우습게 들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생각해봅시다. 만약 중세에 누군가 주식을 만들어서 주식시장을 열었다면 그 사람은 무사하지 못했을 겁니다. 온라인 게임의 아이템도 사람들이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한 새로운 사물에 불과합니다. 가치가 있는 물건은 당연히 거래가 됩니다. 아이템 매매를 나쁘게 보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온라인 게임에 문외한입니다.
▽김=아이템 거래도 ‘깨끗한’ 거래 장치 마련이 시급합니다. 무조건 아이템 거래를 막는 것은 해결책이 안 되지요.
▽황=리니지를 사회문제로 보는 시각은 철학과 자존심의 부재에서 비롯됩니다. 온라인 게임은 세계에서 한국이 1등입니다. 다른 나라를 가르쳐야 하는 입장이란 말입니다. 우리는 외국에 리니지 등 게임을 팔면서 ‘온라인 게임이란 이토록 심오한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돈 된다’는 정도인 것 같습니다.
▽김=작년에 로열티로만 200억원을 거둬들였습니다. 게임이 앞으로 국부를 가져다 줄 것이라 저는 개인적으로 확신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물이 그렇듯, 발전 과정에는 예기치 않은 문제와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온라인 게임 부문에서 한국이 철학으로, 문화로, 돈으로 세계 최강 자리를 확고히 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택진 사장은 ▼
△생년월일:67년 3월 14일
△학력:서울대 전자공학과,전자공학과 대학원
△주요경력:아래아한글 공동개발
한메소프트 창립 한메타자교사 개발
현대전자 아미넷(현 신비로) 개발팀장
엔씨소프트 대표이사
▼황상민 교수는 ▼
△생년월일:62년 11월 10일
△학력:서울대 심리학과 심리학과 대학원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 석·박사
△주요경력:서울대 학생생활연구소
특별연구원
세종대 교육학과 교수 및
학생생활연구소장
연세대 인간행동연구소장
심리학과 교수(발달심리학)
나성엽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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