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해 봅시다]한국-외국기업 이직경험 4人 좌담

  • 입력 2003년 3월 16일 19시 34분


국내기업과 외국기업을 두루 섭렵한 ‘이직의 고수’ 4명이 찌개와 파전을 놓고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왼쪽부터 김대연 과장, 이관숙 과장, 박영석 부장, 고미희 센터장. 안철민기자
국내기업과 외국기업을 두루 섭렵한 ‘이직의 고수’ 4명이 찌개와 파전을 놓고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왼쪽부터 김대연 과장, 이관숙 과장, 박영석 부장, 고미희 센터장. 안철민기자

《“전문성을 키우기에는 외국 회사가 더 낫죠.” “그렇지만도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과장의 말에 김 과장이 미소를 머금은 채 반론을 제기했다. 다시 이어지는 반론, 재반론…. 서울 종로구 인사동 모 음식점에서 외국 기업과 국내 기업을 넘나든 ‘이직(移職) 경험자’ 4명이 최근 자리를 함께했다. CJ 마케팅리서치센터 고미희 센터장, 엑센츄어 박영석 부장, 한국노바티스 임상의학부 이관숙 과장, PCA투자신탁운용 김대연 과장이 초대 손님. ‘선택의 기로에 선 대학 졸업생 및 직장인들을 위해 한국 기업과 외국 기업을 비교해 달라’고 주문했다. 해질 녘에 시작된 담소는 경험담을 버무린 속 깊은 얘기까지 쏟아지면서 자정쯤까지 계속됐다. 곁들여진 약간의 반주도 참석자들 사이의 낯섦을 허무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이관숙 과장=친동생이 상담한다면 외국회사를 권하고 싶어요. 전문성과 선진기법을 익히는 데는 아무래도 낫거든요. 반면 국내기업은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게 장점이지요.

▽김대연 과장=저는 국내 회사에 먼저 들어갔는데요. 전문성은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직장생활 초년에는 국내 회사가 나을 것 같은데요. 특히 외국회사 직원도 한국회사와 네트워크가 없으면 일하기에 불편한 점이 많아요. 물론 국내 회사는 아직 ‘순환 보직’ 개념이 강해 전문성을 길러야 할 중간관리자 때 문제가 될 수 있어요.

▽박영석 부장=자신의 성향에 따라 기업을 골라야 하는데요. 기업문화가 크게 달라 직장을 옮긴 후 심각하게 고민하는 분이 많거든요. 합리성과 개인주의를 존중한다면 외국기업이 조금 나을 것 같네요. 하지만 국내 대기업도 문화가 다 다르듯 외국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늬만 외국기업인 곳도 많지요.

▽고미희 센터장=외국기업에서 국내기업으로 옮기려면 인간관계나 사교성이 좋아야 해요. 적응이 안 돼 돌아가는 경우도 많아요. 반면 국내기업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대중과 다른 의견이 있으면 얘기를 잘 못하는 것 같아요. 외국 기업에선 그런 것 버리고 ‘저질러 야’하는 상황이 많죠.

▽고=처음 저희 회사 분들은 그런 생각을 했어요. 여자가 잘 할까…. 예를 들어 발표를 할 때 저에게는 “그 정도면 잘했지 뭐”라는 표현을 써요. 반면 남자 직원들에게는 “그 부분은 이렇게”라며 짚어줘요. 여자를 무시한다기 보다 고정관념 같은 것이 있나 봐요. 또 국내 기업은 암암리에 인포멀(비공식) 그룹이 있어 중요한 정보도 공유하고 서로 끌어주고 하거든요. 그 그룹에 여성은 못 들어가요. 그런 면에선 외국 기업이 좋습니다.

(그런데 왜 한국 기업으로 갔느냐는 질문에 대해…) 제가 전에 일하던 업체는 조사 쪽이었는데. 마케팅을 해보고 싶었어요. 국내 기업에서 비즈니스다운 걸 해 보고 싶었던 거죠. 돈이 중요했다면 외국 기업에 그대로 있었겠죠.

▽이=주부들은 특히 아이들이 아파서 늦게 출근할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땐 외국 기업이 편해요. 일의 효율을 중시하기 때문에 출근 도장 찍는 게 중요하진 않거든요.

▽김=제가 국내 은행에 근무할 때 남자가 오히려 역차별받는다는 이야기도 많았어요. 하지만 역시 남자에게 책임과 권한을 많이 줬기 때문이죠. 여성에게는 외국 기업이 나을 것도 같네요.

▽고=보통 사람들이 외국기업에 다니면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국내 기업보다 조금 나을 수는 있지만 그렇게 잘하는 건 아닙니다.

▽김=저희 회사는 외국기업이 국내기업을 인수한 경우인데요.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직원이 많아요. 회사 내부적으로 영어를 쓰진 않지만 외국 손님이 꾸준히 찾아오고 보고서 같은 것도 모두 영어로 작성해야 하거든요.

▽이=영어가 그다지 필요 없는 부서가 있습니다. 그래도 직급이 올라갈수록 영어가 필요해요.

▽박=보수와 관련해서도 급여를 많이 받는 것으로 오해하는데 국내 대기업 같은 복리후생을 기대하면 안 되죠. 저는 처음에 퇴직금이 없다는 것에 놀랐어요.

▽김=하지만 숨어있는 혜택도 많죠. 예를 들어 해외 출장때 공식 일정이 끝나면 현지에서 아내와 여행할 수 있는 여지를 주죠. 대신 공식 일정 중엔 숨돌릴 틈도 없이 업무량이 많습니다.

▽박=업무 강도는 외국기업이 훨씬 셉니다. 저는 출장 가서 한 번도 여행해 본 적이 없는데요. 호텔과 사무실만 왔다갔다 하다 끝나죠.

▽김=외국기업 직원들이 명품 족이라는 오해도 있는데요, 실제론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외국기업 직원들은 조직 문화상 자신을 상품화하고 어필하려는 경향이 강해 국내기업보다는 외모에 신경을 쓰는 편이죠.

자정 무렵 초대 손님들은 하나의 합의를 이뤄냈다.

국내 기업과 외국 기업을 비교평가하기보다는 자신의 성격에 가장 잘 맞는 기업을 택하는 것, 어디서 경력을 쌓는 게 자신의 인생설계에 적합한지 판단하는 것 등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이었다.

▼프로필 ▼

▽김대연(32)

-PCA투신 과장

-경력: 동서증권-삼성증권-HSBC


▽박영석(38)

-엑센츄어 부장

-경력: 국내 광고업계-O&M


▽고미희(39)

-CJ㈜ 마케팅리서치센터 센터장

-경력: AC 닐센코리아 소비자 조사본부


▽이관숙(34)

-한국노바티스 과장

-경력: 보령제약-와이어스-코오롱제약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나성엽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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