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해봅시다]소보원 최규학 vs 자동차공업協 김동진

  • 입력 2003년 3월 31일 17시 43분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한국소비자보호원 자동차 실험실에서 최규학(왼쪽) 소보원장과 김동진 한국자동차공업협회장이 만났다. 이종승기자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한국소비자보호원 자동차 실험실에서 최규학(왼쪽) 소보원장과 김동진 한국자동차공업협회장이 만났다. 이종승기자
“가까이 있으면서도 오늘 처음 뵙는군요. 인사가 늦었습니다.”

어색한 만남이란 이런 것일까. 소비자 보호의 ‘야전사령관’인 한국소비자보호원 최규학(崔圭鶴) 원장과 자동차업계를 대표하는 한국자동차공업협회 김동진(金東晋·현대자동차 사장) 회장이 지난달 27일 첫 만남을 가졌다.

소보원과 현대자동차 사옥은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신호등만 없다면 걸어서 5분 거리. 그동안 양측의 거리는 사옥 사이를 가로지르는 8차로 도로만큼 멀기만 했다. 그러나 ‘소비자 보호’라는 공감대는 가깝고도 멀던 두 사람을 한자리에 모이게 했다.

#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VS 이미 변하고 있다

“자동차 관련 피해상담 건수는 연간 1만5000∼1만6000건 정도입니다. 품질 관련 불만이 77%로 가장 많습니다. 우리나라가 세계 6위의 자동차 생산국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자동차업계가 품질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최 원장의 선공(先攻)으로 대화가 시작됐다.

“업체 스스로 제품을 인증하는 ‘자기 인증제’와 제조물책임법 등이 도입된 뒤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습니다. 자동차 리콜 대수는 2001년 51만대에서 지난해 129만대로 늘었습니다. 자동차 보유대수 기준으로 미국과 비슷한 수준(9%)의 리콜을 실시하고 있는 셈입니다.”(김 회장)

최 원장은 준비한 메모를 꺼내들고 조목조목 따졌다. “국산 자동차의 리콜 건수는 늘었지만 시정률은 2001년 89%에서 지난해 82.9%로 줄었습니다. 업계가 리콜에 대해 소극적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 아닙니까.”(최 원장)

최 원장은 소비자의 처지에서 서운한 점을 쏟아냈고 김 회장은 자동차업계가 달라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 집단소송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소비자 보호 분야에도 집단소송제가 도입돼야 합니다. 빠를수록 좋습니다.”

소액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집단소송제’와 ‘자동차 신차 평가제’ 등이 필요하다는 게 최 원장의 주장. 김 회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회사는 이를 대비해 충당금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는 제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소비자 불만이 커질 것입니다. 집단소송제 도입에 대해 찬성하지만 지금은 시기상조입니다.”(김 회장)

최 원장이 한발 물러섰다. 집단소송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자고 했다.

“기업환경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증권분야부터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고 기업이 준비가 되면 소비자 보호 분야로 확대하자는 겁니다.”(최 원장)

# 소비자도 달라져야 한다

“리콜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이 달라졌으면 합니다. 소비자들은 리콜 조치된 자동차를 심각한 결함이 있거나 품질이 떨어지는 것으로 여깁니다. 리콜 조치 후 자동차 판매가 뚝 떨어집니다.”

수세에 몰리던 김 회장이 서운함을 털어놨다. 2만여개의 부품과 신기술이 적용되는 자동차의 품질 결함은 어찌 보면 피할 수 없다는 것. 소비자들이 리콜에 대해 불신을 가질수록 업계는 리콜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최 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리콜에 대한 소비자의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기 위해 소비자 교육 활동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최 원장은 “소비자 보호는 원칙적으로 기업이 자율적으로 해야 한다”며 “그러나 상품과 서비스의 결함이 소비자에게 당장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정부가 수거해 파기하는 방향으로 리콜제도를 손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 소비자 보호가 최우선

“자동차를 판 뒤 더 나은 부품이 나오면 리콜을 해서 좋은 부품으로 교환해주는 것은 어떨까요. 소비자들은 ‘이렇게 좋은 회사가 있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최 원장)

“글쎄요. 문제가 없는 부품을 리콜하면 소비자들이 불안해하지 않을까요. 그렇지만 리콜의 의미를 설명해주는 좋은 사례입니다.”(김 회장)

불편할 것만 같았던 두 단체의 수장은 아이디어를 교환할 정도로 가까이 다가섰다. 소비자 보호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지금까지 소비자 보호는 정부와 시민단체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나 고객이 없으면 기업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평생 고객을 만들기 위해 소비자 보호에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소보원은 기업들이 소비자 보호 활동을 제대로 하는지 시장감시 역할을 맡아주세요.”(김 회장)

1시간반 정도 이어진 대화는 ‘소비자 보호’를 위해 서로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고 끝났다. 이날 자동차공업협회와 소보원은 리콜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공동캠페인을 벌이자고 약속했다.

▼한국소비자보호원 최규학 원장 ▼

△1939년 전남 목포 출생

△고려대 경제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졸업

△1967년 국무총리실 행정사무관

△1999년 국가보훈처장

△2000년 대통령복지노동수석

△2001년 한국소비자보호원장

▼한국자동차공업협회 김동진 회장 ▼

△1950년 경남 진주 출생

△서울대 기계공학과, 미국 핀레이대 공대 산업관리공학박사

△1978년 현대정공 입사

△1998년 현대우주항공 대표이사

△2001년 현대자동차 총괄 사장

△2003년 한국자동차공업협 회장

박 용기자 parky@donga.com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