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쭉이 핀 시골 학교의 교정은 따사로웠다. 20대 청년부터 60대 할머니까지 학사모를 쓴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애티가 채 가시지 않은 청년에서 한복으로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까지…. 겉모습은 달라도 얼굴은 어떤 학교의 졸업생보다 환했다.
26일 충남 금산군 제원면 옛 금강초등학교 교정. 한국벤처농업대학이 두 번째 졸업생을 배출했다. 2년 전 ‘벤처와 농업이 만나’ 폐교(閉校)에 설립한 학교에서 이날 41명의 벤처 농업가가 나왔다.
한국사회에서 존경받는 벤처기업인이었던 정문술 벤처농업대학장(전 미래산업 사장)이 졸업장을 주며 한 명씩 손을 꼭 잡았다. 그는 인사말에서 “한국 농업의 살 길은 벤처라는 극약처방뿐”이라며 “도덕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 벤처”라고 강조했다.
농림부 장관을 지낸 김동태 한중일(韓中日) 농업포럼 회장은 “장관 시절 쉽게 찾지 못했던 한국 농업의 희망을 이곳에서 보았다”며 뿌듯해했다.
1년 과정의 이 학교를 졸업하기는 쉽지 않다. 두 번 이상 빠지면 유급이다. 졸업 논문 격인 사업계획서 심사도 까다롭다. 96명인 2기생 중 졸업생은 41명. 그만큼 남다른 기쁨도 많았다.
김창식 청정나라 사장은 제주도에서 통학하며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비행기와 자동차로 6시간이 넘게 걸리는 길인 점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일이다.
김창환 야콘농장 공장장이 내년 결혼하는 데도 이 학교가 한몫했다. 연인과 함께 수업을 들으면서 사랑이 더 깊어진 그는 “여자친구가 이곳에서 농업에도 돈과 꿈과 희망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귀띔했다. 개교 후 2년간 강의를 해 온 강신겸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누군가는 희망을 꿈꿔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벤처농업대학 학생들은 농업분야 ‘스타’ 기업가를 꿈꾼다. 스타는 농민들에게 제시할 모델이기도 하다.
출판사와 서점을 접고 벤처농업을 시작한 김영표 버섯명가(名家) 사장은 “어느 곳에서 어떻게 해야 팔 수 있는지를 배웠다”며 마케팅과 홍보분야의 ‘지식’을 털어놓았다.
졸업장 수여가 끝나자 1기생들이 2기 졸업생에게 선물을 전했다.
도라지로 만든 캔디, 인삼 초콜릿, 동충하초로 만든 술, 저온(低溫) 냉장 쌀…. 상품화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낸 선배들의 성공작들이다.
이종태 본정(本情) 초콜릿 사장은 “선배들을 따라와 함께 무엇인가 만들어 가자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선물 하나하나가 또 하나의 교재이자 선배들의 바람인 셈이다.
학교 설립과 운영에는 삼성경제연구소가 많은 역할을 했다. 이 연구소 민승규 수석연구원은 “더 이상 농민들도 ‘국민정서법(法)’에만 의존해 감정에 호소하거나 떼를 쓰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사고(思考)의 전환’을 강조했다.
이 대학은 농업을 문화 예술 인터넷 정보기술(IT)에 접목시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다. 최소한 이곳에서의 농업은 더 이상 움츠러들고 사라질 대상이 아니다.
연꽃 차를 만드는 홍철용 바이오굴바라 사장은 “벤처 농업은 뜻있는 사람에게 주어진 하나의 중요한 길”이라고 말했다.
금산=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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