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산업]느낄 수 있는 게임이 좋다

  • 입력 2002년 12월 12일 18시 15분


인간의 ‘뇌’라는 것은 무척 신기한 물건 같다. 빛이 눈을 통해 들어온 순간부터 시각이 시작된다. 시신경은 망막에 맺힌 상을 정보로 바꾸어서 뇌에 보내는데 모두 직선으로 분해된 정보다. 즉 직선의 길이와 기울기만 전달되는 것이다.

직선 정보는 후두부에 있는 시각령으로 전달되어 분석된다. 색깔, 모양, 크기 등을 따로 인식하고, 그것들을 종합해 자신이 무엇을 보았는지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을 남들이 같은 모양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 각자의 뇌가 멋대로 각자의 영상을 합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상현실이라는 개념이 컴퓨터 게임에 도입되기 시작했을 때 몇몇 미국의 게임회사들은 현실을 고스란히 컴퓨터 속에 옮겨 놓는 것이 가상현실이라고 생각했다. 권투를 가상현실 게임으로 만드는 경우, 센서가 잔뜩 달린 신발과 글러브를 착용하고 실제로 스텝을 밟으면서 주먹을 휘두르면 화면 속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는 식으로 게임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주먹을 휘두르는 일이 무척 힘들기 때문이다. 몸을 심하게 움직여야 할 수 있는 게임은 게임이 아니라 고역이다. 게임은 역시 방에서 뒹굴면서 하는 것이 제일 재미있다. 이 점은 PC 게임의 약점이기도 하다.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게임기는 방에서 뒹굴면서 할 수 있지만, PC 게임은 의자에 정자세로 앉아야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PC방 중에는 PC보다 의자 사는데 더 돈을 많이 쓰는 곳이 있다고 한다. 자세가 편안해야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게임 회사들은 가상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랐다. 게임 컨트롤러에 진동 기능을 부착하는 것으로 충분히 현실과 비슷한 체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권투 게임을 하다가 한 대 맞으면 진동이 전달되는 방식이다. 별 것 아닌 자극 같지만, 게임을 몇 번 하다보면 무척 강렬한 자극처럼 느껴진다. 직선 정보를 합성해 영상을 만들어내듯이, 손바닥의 진동을 마치 온몸이 받는 것처럼 뇌에서 ‘느낌’을 합성해 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은 휴대전화에서도 충분히 활용될 수 있는 요소다. 손가락 끝에 미세하게 전달되는 진동을 뇌가 그 자체와는 다른 강한 자극으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활용할 수 있는 곳은 게임만이 아닐 것이다. 휴대전화로 영화를 보는 시대가 곧 올 것 같은데, 그때 손가락 끝의 진동이 어떤 효과를 줄 것인지 무척 기대가 된다.

김지룡문화평론가 dragonkj@cityli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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