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7시 대전 유성구의 한 카페.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리는 카페 안으로 김정호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와 학생 등 20명이 들어섰다. 테이블에는 케이크, 음료, 와인이 놓여 있었다. 이런 분위기라면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리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한쪽 벽면에는 빔 프로젝트로 투사된 수학 공식이 가득했다. 3인 1조로 구성된 4개조의 대학원생들은 기말고사에 해당하는 과제 발표를 이어갔다.
이번 수업의 목적은 한국이 비교 우위인 반도체의 설계와 공정 처리를 인공지능(AI)이 대신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당장 해외 유명 학술지에 제출해도 좋을 내용이 나왔다. 토론도 이어졌다. 대학원생 한은기 씨는 “데이터가 많은 미국과 중국이 상대적으로 유리할 것 같다”고 우려한 반면 김조우 씨는 “고급 데이터가 많은 한국이 여전히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AI 응용 분야 전문가인 김 교수는 발표 중간에 자주 끼어들며 질문했고 박사과정생 5명으로 구성된 과제 평가단은 발표를 마친 뒤 질문했다. 대학원생 노대환 씨는 “농담마저 오가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발표하고 질책이 아니라 조언, 제안이 포함된 질문을 받는다”고 말했다. 발표를 모두 마치자 김 교수가 미리 준비한 와인 8병이 개봉됐다. 시험장은 금세 잔을 부딪치는 소리와 웃음소리로 떠들썩해졌다. 김 교수는 “수업효과는 즐겁고 자유로운 분위기일 때 가장 높다. 수업에 대한 좋은 기억은 이후 연구와 직장생활에서도 탁월한 성과를 내게 해준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번 학기 처음으로 카페에서 학생들이 기말고사 과제를 발표하게 했다. 이전에도 각종 프로젝트 시험 등을 이런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했고 연구실에서도 수평적인 인간관계를 강조해왔다. 대학에서 보직을 맡았을 때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대박’ 아이디어가 대부분 카페와 식당에서 나왔다며 학과 건물에 카페를 유치했다. 그는 “70여 명의 대학원 졸업생 중 40여 명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나머지 30명은 구글 테슬라 엔비디아 퀄컴 등 실리콘밸리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고 일한다”며 “학창 시절의 연구 분위기를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미래의 대학은 어떤 모습일까. 올해 4월 KAIST 구성원들이 펴낸 저서 ‘행정도 과학이다’는 캠퍼스형 대학이 사라진다는 미래학자의 경고를 전하면서 ‘3A 대학’을 전망했다. 3A는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Anyone, Anytime, Any place)’를 뜻한다. 김 교수는 “이미 전 세계 명문대 강의를 유튜브로 시청할 수 있고 이런 교육 콘텐츠를 보유한 구글이 대학을 세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강의실의 일방적인 강의가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제 우리는 ‘추격자’가 아니라 ‘창조자’로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고 있다. 파티 같은 수업이 창의적인 리더를 키울 수 있다면 현재 강의실의 모습을 한 번쯤 재고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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