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점 만점에 2.3점. 중소기업인들이 20대 국회의 중소기업 관련 입법 활동을 평가해 매긴 점수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달 14∼20일 중소기업인 500명에게 20대 국회에 대한 평가와 21대 국회에 바라는 점을 설문한 결과를 30일 발표했다. 그 결과 20대 국회가 ‘잘했다’고 평가한 기업은 8%에 불과한 반면 ‘못했다’는 답변은 47.4%나 됐다. 나머지 44.6%는 ‘보통’이라고 답했다. 사실상 낙제 수준의 성적표다.
중소기업인들은 21대 국회가 가장 먼저 추진해야 할 정책 1순위로 ‘규제 완화’(43.2%)를 꼽았다. 그동안 정부와 정치권이 규제를 풀겠다고 강조해 왔지만 정작 기업들은 규제 완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대기업에 비해 자본과 인력이 달리는 중소기업의 현실을 고려해 규제 시행 시기를 늦추거나 보완책을 마련해달라는 요구도 제때 반영되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환경 규제다.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법’에 따라 연간 1t 이상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기업은 모든 화학물질의 유해성 등에 대한 시험 자료를 마련해 정부에 신고 및 등록해야 한다. 문제는 영세한 중소기업들은 등록 업무를 외부 업체에 거액의 비용을 내고 맡겨야 한다는 점이다. 올해 1월부터 유해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의 시설과 관리 기준을 강화한 ‘화학물질관리법’이 시행된 것도 큰 부담이다. 지난해부터 중소기업계는 정부 관계자와 정치인을 만나 환경 규제에 따른 보완책을 마련해 달라고 거듭 촉구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변화는 없었다.
벤처기업계에서도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목소리가 크다.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는데 정치권과 정부는 이런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규제 샌드박스’와 ‘규제자유구역’을 통해 새로운 사업을 시험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줬지만 그 혜택을 누리려면 심의나 심사를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벤처기업인들은 “또 다른 규제”라고 지적한다.
이달 22일 몇몇 벤처기업인들은 ‘규제개혁당(가칭)’ 창당을 선언했다. 한국의 규제 방식을 법으로 금지하지 않는 건 다 할 수 있도록 하는 ‘네거티브 규제’로 바꾸는 게 창당 목표다. 창당 발기인 중 한 명인 고경곤 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장은 “얼마 전 CES(소비자 가전 전시회)에는 유럽의 디지털 헬스케어 관련 벤처기업이 대거 참여했는데, 원격의료가 막힌 국내에서는 거의 다 불법”이라며 “기업들은 상상력을 발휘해 신산업을 발굴하는데 정부나 정치권은 기존 법 테두리 안에서만 하라고 한다”고 지적했다.
많은 기업인들은 “규제를 풀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고 말한다. 정치권의 관심은 21대 총선이 치러지는 4월 15일에 쏠려 있을 테지만 경제의 주요 주체인 중소기업들은 기업의 생존과 나라의 미래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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