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는 공룡처럼 한동안 번성했지만 결국은 멸종한 종(種)들이 있는 반면 포유류나 곤충류처럼 지금도 번성을 구가하고 있는 종들이 있다. 무엇이 멸종과 번성을 갈라놓는가? 진화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들을 갈라놓는 것은 그들이 선택한 전략 여하(如何)였다.
오늘날 번성을 누리고 있는 종들은 과당경쟁이 없는 황무지를 찾아 그것을 개척하는 전략을 택했다. 5억년 전 약육강식이 판치는 바다에 식상한 어류들에게 강물은 아무도 살지 않는 황무지(frontier)였다. 그러나 바다 속 어류가 민물 속으로 들어가려면 삼투압을 극복할 수 있는 신체적 구조조정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그들은 원형질막을 개량하고 온몸을 비늘로 둘러싸며 심장을 발달시켜 삼투압을 막아내려는 노력을 계속했다. 이런 노력이 진화로 이어지면서 3억9000만년 전 최초의 담수어가 나타났다.
민물 진입에 성공하는 어류의 수가 늘면서 민물 속에서도 약육강식은 시작되었다. 이렇게 되자 민물 어류 중 또 일부가 아직 아무도 살지 않는 육지를 개척할 전략을 수립했고, 육지에 오르기 위해 그들은 아가미를 폐로, 지느러미를 사지로 전환시키는 구조조정 노력을 시작했다. 이러한 노력이 진화로 이어지면서 3억6000만년 전 최초의 양서류가 상륙에 성공, 육상에서 동물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이처럼 과당경쟁이 없는 황무지를 개척하려는 생존전략은 오늘날에도 현명한 삶의 방식인 것 같다. 1880년 미국 국세조사보고서는 1제곱마일당 인구가 2, 3명 이하인 지역을 프런티어로 정의하면서 세제상 혜택을 주고 있다. 미국은 서부 개척의 프런티어가 끝나자, 새로운 차원의 프런티어를 과학과 기술 영역에서 개척, 전자공학 생명과학 디지털 산업, 우주과학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프레드릭 터너 교수는 미국 역사의 특징이 프런티어 정신에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남들이 덜 간 길’이라는 시에서 “단풍진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두 길을 갈 수 없어 유감이구나/…나는 남들이 덜 간 길을 택했고/그것이 모든 차이를 만들었구나” 하고 읊어서 (남들이 덜 간 길을 택하는) 프론티어 정신을 예찬하고 있다. 이런 정신은 미국이 짧은 기간에 세계최강국으로 발전하는 데 일조 했을 것이다.
#제로섬경쟁(zero-sumgame)은 피해야!
프런티어 정신의 반대는 ‘나도 남들 따라’이다. 과거 한국 기업들은 경쟁사가 공장을 확장하면 나도 확장하고, 신규분야에 진출하면 나도 진출하다가 과잉투자, 과잉경쟁으로 1997년의 경제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우리에게 프런티어 정신이 없는 것은 아니다.
1950년대 황무지나 다름없던 국악의 세계로 뛰어든 당시 황병기 학생,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청매실을 기능성 건강식품으로 개척한 홍쌍리 여사 등이 보여준 프런티어 정신은 오늘날 기업으로 번지고 있다. CDMA 기술 자체는 미국에서 왔지만 그것을 최초로 상용화한 것은 우리 기업의 프런티어 정신이다. 그 결과 우리는 이동통신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게 된 것이다.
프런티어 정신이 역사와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제로섬 경쟁’ 개념이 필요하다. 제로섬이란 합하여 영(zero)이 된다는 뜻이다. 그 전형적인 예는 선거에서 찾아볼 수 있다.유권자 수는 일정하기 때문에 누가 한 표를 더 얻으면 다른 누가 한 표를 잃게 된다. 그래서 아름다운 선거란 영원히 없을 것 같다.
기업경영에서는 (수요가 한정되어 있는) 시장점유율 싸움이나 (생산성 향상이 없는) 노사분규 등이 제로섬 게임이다. 제로섬 게임은 새로운 가치창출 없이 한정된 자원의 배분싸움이기 때문에 경제발전에 기여하기 어렵다. 약육강식을 제로섬 게임으로 인식하고 제로섬의 굴레에서 탈출하기 위해 바다에서 민물로, 민물에서 다시 육지로, 프런티어를 개척한 종들이 번성의 주인공이 된 것은 역사적으로 당연한 귀결이다. 다음 글에서는 프런티어 정신이 세계적 기업을 구축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yoonsc@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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