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띠를 졸라매고 앞만 보고 달리던 시절이 끝나가고 있다. 소득이 늘고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생활패턴은 급속히 변하고 있다. 이른바 ‘삶의 질’을 높이려는 욕구가 현대 소비자들을 지배한다. 당연히 건강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업종이 유망산업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장밋빛 기대는 금물. ‘삶의 질’과 관련된 산업을 5회에 걸쳐 시리즈로 짚어본다.》
2000년 초 인간의 유전자 정보가 담긴 게놈지도가 공개되자 사람들은 흥분했다.
모든 질병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에 넘치면서 바이오 제약업계에도 열풍이 몰아쳤다. 한국에도 바이오 기업이 봇물처럼 생겨났다.
결과는 참담했다. 삼성서울병원 진단병리과 김대식 교수는 “2년 전 생긴 바이오 제약 기업 가운데 제대로 된 제품을 내놓은 업체는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주가는 폭락했다. 하지만 지금도 달콤한 미래로 투자자를 부르는 기업들이 있다.
▽가능성과 위험의 공존〓유전공학 바람이 거세게 불던 80년대 미국에는 수백개의 바이오 제약 기업이 나타났다. 이 가운데 성공한 기업은 암젠(Amgen) 정도. 이 회사는 적혈구 증강인자인 EPO 등 단 두 가지 제품으로 20여년 동안 연평균 16.1%의 고성장을 지속했다.
미국 IDEC제약의 주가는 98년 7달러였지만 같은 해 인공항체인 리툭산을 선보인 뒤 2000년 주가는 70달러까지 올랐다.
두 회사는 바이오 제약 업종의 무한한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네오딘의학연구소 황유성 이사장(전 충북대 의대 교수)은 “한 제품을 개발하려면 수천억원의 비용과 10여년의 오랜 기간이 필요하다”며 “개발에 성공해도 상업성이 없는 기술이나 물질이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SK증권 하태기 연구원은 “특허출원했다는 정보로 바이오 기업이나 제약주에 투자했다간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라며 “상품화 단계를 확인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식품의약품안전청에 품목 신청을 마치고 임상실험 3단계는 거쳐야 믿을 만하다”고 말했다.
▽정보기술(IT)버블 재연 우려〓A제약 주가는 최근 일주일 연속 상한가를 보이다가 연일 떨어져 제자리로 돌아갔다. 제약 바이오 기업 가운데에는 이런 종목이 적지 않다. 신물질 특허 등 재료가 많고 소형주여서 작전세력의 먹잇감이 되기 때문이다.
증시에서 거래되는 제약 바이오 기업은 60여곳. 하지만 하 연구원은 “한국에서 제대로 된 바이오 업체는 한두개뿐인 것 같다”고 말한다.
동양증권 김치훈 연구원은 바이오 기업의 성공 조건으로 △DNA 관련기술 확보 △개발 제품에 대한 특허 확보 △꾸준한 자금 유치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등을 꼽았다.
그는 “국내에서 이런 조건을 모두 갖춘 업체는 하나도 없다”며 “LG생명과학 유한양행 등 일부 업체들이 FDA승인에 도전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전략과 의지, 돈이 맞물려야〓국내 선두업체인 LG생명과학은 ‘팩티브 항생제’를 개발해 미국 FDA 승인에 도전했다. 다국적 제약사인 GSK사와 손을 잡고 승인받는 일에 매달렸으나 GSK가 손을 떼는 바람에 혼자서 미국 FDA 승인을 추진 중이다. 기술, 특허, 자금을 갖추고도 세계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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