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이 부자만들기]부모를 보고 배운다

  • 입력 2002년 10월 14일 18시 05분


1984년 늦은 봄. 부산 좌천초등학교 5학년인 한 소년이 어머니를 졸라 삼성전자의 8비트 개인용컴퓨터(PC)를 샀다. 밤새 컴퓨터를 ‘갖고 놀다’ 설명서에도 없는 재미난 기능을 발견, 월간지 ‘컴퓨터학습’에 기고했다. 얼마 뒤 받아본 원고료! 신이 난 소년은 더 열심히 기능을 찾았고 기고는 몇 차례 이어졌다.

이후 여름방학이면 아예 컴퓨터매장으로 달려가 아르바이트를 했다. 반장인 데다 공부도 잘해 부모도 말리지 않았다. 처음엔 점심으로 사례비를 대신하던 매장 주인은 불법복제 ‘로크(lock)’를 거침없이 풀어버리는 어린 ‘해커’에게 주급(週給)을 주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컴퓨터를 실컷 만지면서 돈도 버니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91년 대학입시에서 컴퓨터그래픽을 전공하겠다며 서울대 미대를 지망했다. 대학생이 되자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어렵지 않은 생활이었지만 여력이 있을 때마다 밖에서 일을 찾던 젊은 시절의 어머니를 보며 자란 탓.

입시과외보다는 천직으로 할 일을 찾았다. 대기업에 다니던 선배들이 그의 깔끔한 일솜씨를 보고 점점 더 많은 일을 맡겼다.

95년 12월 대학 3학년 때 경리직원 1명, 동업자 1명과 함께 회사를 차렸다. 알음알음으로 받던 수주가 늘면서 고객들이 기업 대(對) 기업으로 일하는 게 편리하다며 사업자등록을 원했기 때문. 2000년 사업 확장이 필요해 퇴직한 부친에게 투자를 요청했다. 부친은 “꼭 성공해서 이자까지 갚아라”며 퇴직금을 빌려 주셨다.

경기의 부침에도 불구하고 96년 이후 단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사업이 잘 되기도 했지만 벌어들인 범위 안에서 지출했기 때문이다. ‘현실감각’을 잃어버릴까봐 최근까지 신용카드도 쓰지 않았다. 99년 벤처붐이 일었을 때도 직원 5명이 모여 ‘3인분에 공깃밥 추가’로 식사를 해결했다.

하지만 직원들은 이젠 “사장은 짠돌이지만 투자할 땐 과감하다”고 이해해준다. 다 자란 소년은 “검소했지만 자식에게 투자할 때를 아셨던 부모님의 영향”이라고 말한다.

이 스토리의 주인공은 올해 코스닥증권시장에 자신의 회사를 등록시킨 e비즈니스 공급 기업 이모션의 정주형 사장(29)입니다. 모든 부모들이 자식교육에 참고할 만한 성공담이지요.

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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