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의 강력한 권고로 시작된 캐디 생활은 소년의 인생에 전환점을 가져옵니다. 의존적이던 성향은 자립적으로 바뀌었고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도 터득하지요.
“성공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을 통해 사람이 얼마나 멋있을 수 있는지를 꿈꿀 수 있었다.”
다양한 직종을 경험하면서 적성도 깨닫습니다. 공장에서 전동 드릴로 코르크에 구멍을 내는 일은 채 3주도 버텨내지 못하자 ‘꼼짝 않고 앉아서 하는 일은 절대 안된다’고 다짐하죠.(자서전 ‘끝없는 도전과 용기’에서)
전설적 주식투자자인 미국의 피터 린치도 11세에 캐디로 나섭니다. 처음엔 신문배달보다 돈을 많이 번다는 게 매력이었지만 고등학생이 되면서 더 근본적 혜택에 눈을 뜹니다.
“내 고객은 질레트 피델리티 등과 같은 대기업의 회장이나 대표이사였다. 출세의 빠른 길을 알게 됐다.”
천직(天職)이 될 주식투자에도 마음의 문을 엽니다. 골프 클럽의 회원들은 멋지게 드라이브 샷을 날린 뒤 투자 성공담을 늘어놓았고 한 게임을 도는 동안 적어도 다섯 개의 투자정보를 들으면서 투자를 꿈꿉니다.
가난한 부모는 ‘주식시장은 돈을 잃는 위험한 곳’이라고 가르치지만 린치는 “고객처럼 투자로 돈을 벌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자서전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에서)
어린 시절의 경험이 어떤 인생을 살아갈지 결정짓기도 합니다. 우리도 몇 해 전부터 학교에서 ‘진로 체험’을 도입해 권장하고 있지요. 하지만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울 변두리 지역의 한 중학교 교사는 “학교는 진로 체험을 장려하지만 학부모가 내로라할 만한 직업을 가진 학생이 거의 없어 활성화하기 어렵다”고 털어놓습니다.
우리 사회엔 아이들에게 다양한 직업 경험을 해 주는 게 중요하다는 공감대도 없고 그럴 책임도 느끼지 못하죠. 진로 체험은 흔히 학부모의 직장으로 제한됩니다. 부모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종에서 일하는 아이만이 ‘그럴듯한’ 직장을 방문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싱가포르는 이런 면에서 배울 점이 많습니다. 5년 전 방문했을 때에도 학교가 직접 나서 어린 학생들의 진로 경험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사회의 적극적인 후원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아이’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부자 만들기에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갖는 모습은 학생과 부모에만 진로 체험의 부담을 지우는 우리가 본보기로 삼아야 할 사례였습니다.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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