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및 유통 분야에 8개 계열사를 거느린 이랜드는 지난해 말 ‘매년 순이익의 10%를 각종 자선활동에 기부하겠다’는 깜짝 선언을 했다. 순이익의 10%는 기업으로서는 꽤 큰 규모. 이 회사는 작년 매출 1조원에 1060억원의 순이익을 내 올해에 1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한다.
요즘 많은 기업이 각종 기부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기업들이 윤리경영의 일환으로 사회공헌활동을 강화하면서 기부에 대한 시각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기부활동은 시장의 신뢰를 얻고 기업가치를 높이는 마케팅 전략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는 기부활동을 수해나 참사 등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성금을 내는 준조세적 성격으로만 여겼던 과거와는 크게 달라진 모습. 기부금을 그저 ‘버리는 돈’으로만 보지 않게 된 것이다.
실제로 기업의 기부활동은 기업가치나 경영실적 향상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전담 부서를 두고 윤리경영을 실천하고 있는 기업의 주가상승률은 99년부터 2002년까지 평균 46.3%로 집계됐다.
기부활동의 영역이 단순한 금전적 지원에서 인적 봉사로 확대되면서 회사와 사원이 함께 참여하는 ‘매칭그랜트’ 사업도 늘고 있다. 임직원들이 정기적으로 기부금을 내면 동일한 금액을 회사가 부담하는 선진국형 사회공헌제도다.
삼성SDI는 2000년부터 2700명의 임직원이 ‘사랑의 빛’ 기금을 모아 작년 말까지 7억원을 소년소녀가장 및 시각장애인 지원사업 등에 썼다. 한국존슨앤드존슨은 직원과 회사가 시작한 매칭그랜트사업에 본사와 국제라이온스협회까지 가세해 조성한 자선기금 10만달러로 어린이 시력검사사업을 벌이고 있다. 풀무원은 매월 20일을 ‘이웃사랑 실천의 날’로 정해 전국 25개 사업장에서 모금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직원이 내놓은 것과 같은 금액을 회사측에서도 내고 있다.
생산적인 기부문화에 대한 기업의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주요 대기업들은 이를 위한 예산을 늘리고 있다. 삼성은 올해 3500억원가량을 사회공헌활동에 쓰기로 했으며 LG도 계열사별 기부금과 성금액을 대폭 늘리는 외에 공익재단을 통한 사회공헌활동에 225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장학사업을 통해 사회공헌에 주력해 온 SK는 정보기술(IT) 관련 장학재단을 설립해 1000억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할 예정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이러한 자세변화에도 불구하고 기부문화가 성숙단계에 접어든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아직도 사회공헌활동을 ‘자선’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또 한정된 금액을 이곳 저곳 쪼개 쓰다 보니 기부활동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문제도 생긴다.
전경련 박종규 사회공헌팀장은 “한국 기업도 여러 분야에 조금씩 기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외국 기업처럼 한 가지 주제에 장기적으로 기부하는 데 눈을 돌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한기자 freewi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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