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2월 금호석유화학의 당시 사장 박모씨는 계열사 합병에 관한 내부정보를 이용해 35억원의 부당 이익을 남겼다. 증권거래법에 따라 최고 10년 이하의 징역에 부당 이익의 3배에 이르는 벌금형을 부과할 수 있으나 법원은 박씨에게 5000만원의 벌금을 매겼다. 증권거래소 시장감시부 김정수 팀장은 “솜방망이 처벌이 내부정보를 이용하려는 유혹을 막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우사태’로 경종을 울린 분식회계의 관행도 완전히 뿌리뽑히지 않았다.
작년 5월 한빛전자통신은 코스닥시장에 등록된 지 5개월 만에 퇴출됐다. 등록한 직후 대표이사가 회계장부를 부풀린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고 코스닥위원회는 퇴출을 결정했다. 이는 회계법인에 대한 불신은 물론 코스닥시장을 외면하도록 만들었다.
이 모두가 경영담당자와 외부의 이해관계자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정보 불균형’이 빚어낸 일이다. 정보불균형은 시장의 불투명성과 불신을 조장해 투자를 가로막는다. 자연히 자본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못하고 경제의 활력을 좀먹는다. 공정하지도 못하다. 이 때문에 정부는 증권거래법을 통해 내부자의 미공개정보 이용을 규제하고, 각종 공시제도를 강화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정보막힘 현상을 해소하고 있다.
정보 불균형이 기업의 내·외부자 사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외부의 이해관계자 가운데서도 ‘큰손’과 ‘개미’ 사이에 정보력 격차가 크다. 중요 정보를 접한 증권사는 기관에 먼저 귀띔해줬고 뒤늦게 소액투자자가 알 때쯤이면 이미 ‘잔치는 끝난 뒤’였다. 이런 폐해를 없애기 위해 정부는 작년 11월 기업의 주요 정보를 기관과 개인에게 동시에 공개하는 ‘공정공시’ 제도를 도입했다. 현대증권 오성진 스몰캡팀장은 “이를 계기로 ‘기업정보의 투명한 공급→투자자의 신뢰 회복과 펀더멘털(정보)에 기초한 투자→실력 있는 회사의 주가상승’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력 있는 회사는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한다는 믿음이 확산되면서 정보공개가 회사가치를 가늠하는 기준으로도 자리잡아가고 있다. 동양증권 황찬규 애널리스트는 “실적이 좋은 회사일수록 공시에 적극적이며 공정공시를 회피할수록 부실하다고 판단해도 좋다”고 말했다. 단말기 부품업체 인탑스처럼 매월 실적을 발표하는 회사도 늘고 있다.
서강대 경영학과 최운열 교수는 “투명한 정보 공유로 기업이 신뢰를 얻으면 시장에서 싸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등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다”며 “기업들의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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