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신뢰경영]<17>작전 없애야 증시가 산다

  • 입력 2003년 3월 6일 18시 53분



‘현대증권 벌금 70억원,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의 자금 2134억원으로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 주가를 조종해 1500억원의 부당이익을 본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 서울지법이 1999년 11월에 내린 판결은 매우 관대했다. 내부자거래와 시세조종은 10년 이하의 징역, 부당이득은 3배까지 벌금을 물릴 수 있도록 한 증권거래법 규정에 비해선 솜방망이 처벌이었던 셈.

2000년 7월 코스닥시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던 세종하이테크 주가조작 사건에 가담했던 펀드매니저 5명과 이 회사 대표 및 증권사 부지점장은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연재물 목록▼

- <16>투명한 정보공유가 기업가치 높인다
- <15>환경문제 소홀하면 모든것 잃을수도
- <14>기부 많이 하면 기업가치 높아진다
- <13>지역사회에 베풀면 더 많이 돌아온다
- <12>끊임없는 혁신으로 기업가치 높여라
- <11>발주-협력업체 서로 도와야 산다
- <10>비전-수익을 직원들과 나눠라
- <9>고객의 불평에 귀 귀울여라
- <8>'리스크관리'로 재무부실 미리 막아라
- <7>협력업체와도 공정하게 주고 받아라
- <6> '정경유착'벗고 당당하게 홀로 서라
- <5>법인세, 번만큼 내라
- <4>엄격한 외부 감사로 회계 투명성 ↑
- <3>기업지배구조 개혁 지주회사가 첫단추
- <2>이사회 ‘독립’ 아직은 ‘먼길’
- <1>소액주주 믿음이 기업성장 밑거름

주가조작이 끊이지 않고 있다. 월례 행사처럼 이어지는 ‘작전’은 증시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가장 무서운 적. 이 때문에 시장이 여전히 불투명하고 기업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한국주식이 푸대접받는 요인이 되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작년 2월 주가조작에 대해 ‘선전포고’를 했다. 금감위에 준수사권을 가진 조사기획과를 신설했다. 작년 4월 증권사 직원이 주가조작에 가담한 점포를 폐쇄시키는 초강경대책을 썼다. 홈트레이딩(HTS)과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한 사이버 주가조작을 막기 위해 100여개의 증권정보 사이트도 모니터하고 있다.

올 2월부터는 증권회사들도 자체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했다. 허수성 호가 같은 불공정 행위를 각 증권사 지점에서 일찌감치 찾아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증권거래소와 코스닥증권시장은 상장·등록돼 있는 기업의 퇴출기준도 강화해 부실기업을 이용한 주가조작이 원천적으로 어렵게 만들고 있다. 부도가 나거나 자본이 전액 잠식되면 즉시 상장을 폐지하는 것 등이 그것.

하지만 거미줄처럼 촘촘한 감시시스템에도 불구하고 ‘주가조작 근절’이란 정부의 약속은 여전히 지켜지지 않는 공약(空約)이다. 고발만 있고 처벌은 없는 탓이다. 굿모닝신한증권 정의석 부장은 “들키더라도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 있다는 믿음이 한탕을 노리는 주가조작을 계속 만들어 낸다”고 지적한다. 주가조작으로 구속됐던 사람이 집행유예로 나온 뒤 다시 주가조작에 나서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과 사실을 검색할 수 있는 검증시스템이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가조작에 대한 조사가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는 것도 개선해야 할 과제. 금감위에 준사법권이 주어졌지만 본격적인 수사를 하려면 검찰에 고발해야 한다. 조사에서 검찰 기소까지 6개월∼1년이나 걸린다. 주가조작으로 한탕을 한 범법자들이 자료를 없애고 해외로 도망간 뒤 수사가 이뤄지는 경우도 많다.

증권거래소 김정수 시장감시부 총괄팀장은 “미국은 한국에 비해 증시 감시시스템이 크게 정교한 것은 아니지만 한번 걸리면 영원히 증권업계에 발을 못 붙이도록 처벌한다”며 “주가조작을 하는 사람은 엄하게 처벌해야 불공정행위가 줄어들고 증시 투명성이 높아진다”고 밝혔다.

홍찬선기자 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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