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신뢰경영]<18>금융시장 '기업 심판관' 기능 강화해야

  • 입력 2003년 3월 13일 18시 32분



한국 기업들의 주가는 저평가돼 있다. 아시아국가들과 주가수익비율(PER·주가/주당순이익)을 비교해보면 일본 36.5, 대만 18.8, 싱가포르 16.7인 반면 한국은 6.6에 불과하다. 비교적 시황이 괜찮았던 작년 10월10일을 기준으로 비교해 본 수치이니 지금은 격차가 더 벌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태국(11.9), 인도(10.9)보다 낮은 수치다. 실적에 걸맞은 대우를 못 받고 있는 셈이다.

▽안타까운 삼성전자=지난해 말 한 미국계 투자은행이 흥미로운 조사를 한 적이 있다. ‘애널리스트들의 기업 영업이익 전망이 실제와 얼마만큼 차이가 나는가’라는 주제였는데 삼성전자의 경쟁업체 노키아, 소니, 타이완 세미컨덕터 매뉴팩처링(TSMC·세계 최대의 수탁생산 반도체 회사)이 대상이었다. 결과는 삼성전자 19.3%, TSMC 17.0%, 노키아 14.0%, 소니 12.0% 순이었다. 차이가 작을수록 기업의 실제 영업이익이 애널리스트의 전망과 일치한다는 뜻. 그만큼 기업의 활동과 내용이 투명하게 공개돼 애널리스트들이 제대로 판단할 수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삼성전자는 매출액과 순이익만을 공시했고 EBITDA(이자세금 감가상각 차감 전 이익), EBIT(영업이익), 자본투자, 감가상각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반면 소니는 모든 부분을 공시하였다.

열거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의 공시제도는 기업들이 고개를 흔들 만큼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하지만 세계 수준의 기업들과 비교해보면 중요 정보들에 대한 공시는 여전히 미흡하다. 제도도 중요하지만 정보를 공개하려는 기업의 마인드가 얼마나 결정적인지 잘 알려주는 사례다.

▽금융시장의 상벌(賞罰)기능〓미국의 월가처럼 잘 발달된 금융시장은 ‘경제의 심판관’ 역할을 한다. 좋은 기업엔 저금리와 높은 주가로 보상한다. 나쁜 기업을 골라내 범칙금리를 물리고 끝내 퇴출시킨다. 기업의 실력에 대한 불투명성이 사라지고 신상필벌이 행해지면서 결과적으로 좋은 기업만 살아남아 국민경제의 경쟁력이 강해지는 선순환이 이뤄지는 것.

이 같은 선별작업의 전제조건이 되는 것이 믿을 만한 기업평가와 회계, 그리고 공시다. 정기홍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물이 원활히 흐르는 것이 시장이라고 할 때 수로를 만들고 막힌 곳을 뚫어주는 것은 이 같은 제도”라고 말한다.

엔론사태 이후 미국에서 만들어진 사베인스-옥슬리법은 감사인의 독립성 제고, 기업임원의 책임성과 기업공시 강화, 애널리스트의 이해상충 방지 등을 강화시켰다. 그런 제도를 통해 정보의 흐름을 정상화하고, 자본시장의 기업 선별기능을 강화해야만 시장참여자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분식회계 등으로 금융시장의 불안이 계속되면 기업 전체에 대해 평가가 낮아질 수 있다. ‘SK그룹 사건’에서 한국경제 전체가 겪고 있는 일이다.

김용기기자 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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