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우스 주가는 발표 직적인 18일 3.91달러에서 지금은 장외시장에서 1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이번 조사는 SEC와 법무부, 연방수사국(FBI)이 분식회계 공동조사에 착수한 이후 첫 합작품이다.
“지금은 그 누구도 ‘우리는 깨끗하다’고 말할 수 없다. 어디서 뭐가 터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미국의 기업들이 모두 납작 엎드려 있다.”(회계법인 KPMG 박종연 파트너)
▽월가의 전망 맞추기에 급급〓한때 최고의 투명성을 자랑하던 미국은 엔론사태를 겪으며 급격히 추락했다. 아델피아 월드콤 등 회계부정이 적발돼 해당 기업과 감사를 맡았던 회계법인까지 파산한 데 이어 루슨트 등 신경제를 주도했던 대표적인 정보통신(IT)기업 마저 분식회계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사태의 원인을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 “월가 애널리스트가 내놓는 단기수익전망을 맞추기 위해 회계부정을 저질렀다”는 것.
미국공인회계사협회(AICPA) 찰스 랜즈 이사는 “잘못된 생각을 가진 최고경영자(CEO) CFO가 애널리스트의 전망을 맞추기 위해 노력해왔고 그 때문에 장기적인 경영성과보다는 단기실적에 집착해왔다”며 “특히 3개월마다 실적발표가 이뤄지면서 CEO CFO는 부풀려진 실적에 따라 잘못된 보상을 받아왔다”고 지적했다.
기업이 매 3개월마다 매출과 이익이 큰폭으로 늘어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분식회계를 통해 이익규모를 부풀리고 경영진은 과대포장된 실적에 따라 수백만달러의 보너스와 스톡옵션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재무제표는 투자자 채권자 등 이해관계자가 기업의 경영상태를 객관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료다. 따라서 재무제표가 조작되면 기업과 투자자간 ‘정보의 불균형’이 심화돼 안심하고 투자할 수 없다. 자연히 투자 등 자본거래가 위축되며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이뤄지지 못함에 따라 경제활성화도 이뤄지지 않는다.
찰스 랜즈 이사는 “경영진이 회계법인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면 회계법인은 곧바로 감사를 포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회계법인은 공정한 감사를 바탕으로 자본시장의 정보불균형을 해소하는 첨병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것.
▽지배구조 개선에서 풀어나간다〓한국 대기업의 문제가 ‘제왕적 총수’라면 미국에서는 ‘제왕적 CEO’가 문제다. 윌리엄 도널슨 SEC 의장은 “최근까지도 미국기업의 CEO는 경영자가 아닌 전제군주(monarch) 역할을 해왔다”며 “사태해결의 핵심은 기업지배구조에 있으며 이사회의 기능을 강화해 이사회가 CEO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과거 엔론에서 보듯 CEO가 인사권으로 이사들을 장악하면서 사내 사외이사 모두 CEO를 견제하지 못했다는 점을 시인한 것.
헬스사우스 사건에서도 미국식 기업지배구조의 허점이 발견됐다. 경영진을 감시하며 재무제표가 적절하게 작성됐는지를 내부적으로 감시해야 할 감사위원회(Audit committee)가 2001년 단 한번밖에 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위원회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것.
미국은 최고경영진의 범죄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 ‘이사회 독립성 강화’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안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워싱턴·뉴욕=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美 기업회계감독委 역할 ▼
회계부정에 대한 미국의 종합대책은 ‘사베인스-옥슬리법’으로 요약된다.
특히 증권거래위원회(SEC)와는 별도로 회계법인을 직접 관리 감독하는 기업회계감독위원회(PCAOB)를 설립하는 것이 이 법의 핵심내용이다.
법 내용의 하나는 회계법인이 고가의 컨설팅계약을 따내기 위해 회계감사를 대충대충 해주는 연계고리를 차단하는 것. 이는 엔론사태를 계기로 불거졌으며 회계법인은 이제 한 기업에 대해 회계감사와 컨설팅 서비스를 동시에 할 수 없도록 바뀌었다.
법제정 과정에서는 경영진이 재무제표를 조작했는지를 감시하는 감사 기능과 경영진의 요청에 따라 이뤄지는 컨설팅 기능은 서로 상충되기 때문에 동일기관이 수행해서는 안 된다는 ‘이익충돌이론(conflict of interest)’이 뒷받침됐다.
국내에서는 금융감독원이 회계법인을 간접적으로 감독하지만 정기적인 직접조사권은 없다.
위원회는 회계법인의 등록과 검사 제재, 기타 투자자 보호에 필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또 민간기구에 맡겨놨던 감사기준 제정권도 넘겨받아 막강한 권력기구로 부상할 전망이다.
PCAOB의 매리 매큐 대변인은 “회계부정 사건으로 투자자의 권익이 크게 손상돼 왔다”며 “위원회는 회계법인이 감사기준을 제대로 지켰는지를 조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위원회의 원래 계획은 미국의 금융시장에서 거래되는 기업을 감사한 회계법인도 PCAOB에 등록할 것을 요구했다. 이렇게 되면 미국시장에서 해외예탁증서(DR)를 발행한 하나로통신이나 미국증시에 상장된 국민은행을 감사한 국내 회계법인들도 PCAOB의 감독을 받게 돼 파장이 아주 커진다. 이 때문에 외국기업의 반발이 워낙 거세 한발 물러선 상태다.맥큐 대변인은 이에 대해 “아직 뚜렷한 방침이 정해지지 않았다”며 “다만 미국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한 기업은 모두 투명한 재무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원칙을 밝혔다. 미국은 PCAOB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면 회계법인이 감사 또는 컨설팅계약을 따내기 위해 고객기업의 잘못을 눈감아주는 사례가 크게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美 KPMG 인터내셔널 알스퍼회장 ▼
미국의 ‘빅4’ 회계법인 가운데 하나인 KPMG 인터내셔널의 로버트 알스퍼 회장(사진)은 “예상과는 달리 분식회계 사태를 계기로 회계법인의 수익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분식회계가 이토록 만연한 이유는….
“전체의 95%는 정직하게 재무제표를 만들고 있다. 1% 미만의 사람들이 회계부정을 저지르고 5%가량은 분식회계의 유혹을 느끼고 있다고 본다. 분기별 실적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일정한 선을 넘게 되고 실적을 과장하기 마련이다. 미국은 이 5%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심하고 있다.”
―회계부정을 막기 위해 미국이 해야 할 일은….
“CEO가 회계부정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직원들에게 줘야 한다. 또 감사위원회는 내부고발자(whistle-blower)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CEO, CFO가 재무제표에 서명하는 것은 지나치게 기업활동을 위축시켜 예상치 못한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회계부정을 막기 위한 KPMG의 노력은….
“세계 각지의 감사파트너는 중요한 회계처리 사안을 글로벌 리스크 매니저에게 보고하고 전체회의를 통해 결정한다. 이들이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할 것이다. 고객을 선정하는 단계에서부터 리스크 관리는 시작된다.”
―사베인스-옥슬리법으로 회계법인의 수익이 떨어지지 않나.
“그렇지 않다. 앞으로 회계법인은 이사회가 아닌 감사위원회와 더 많은 일을 할 것이다. 기업의 내부직원보다는 회계법인이 축적한 지식의 양이 더 많기 때문에 회계부정 방지에 주력하는 감사위원회는 회계법인에 더 많은 일거리를 줄 것이다. 감사위원회는 재무실적을 확정짓기 전에 회계법인의 사전검증을 받고 싶어한다.”
―한국에서 회계부정을 막으려면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나.
“기업지배구조와 감사위원회, 공시강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정부는 미국처럼 규제를 강화하고 기업은 이사회의 역할을 강화하는데 동시에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을 갖춰야 한다. 회계사는 감사할 때 본인이 충분히 의혹제기적(skeptical)인지를 항상 염두에 두고 다른 회계사와 협의하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
뉴욕=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특별취재팀>
▽팀장=허승호 경제부 차장
▽팀원=김용기 신연수 이강운 공종식 정미경 박중현 김두영
홍석민 기자(이상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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