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후 셰필드 부인의 재정상태에 맞게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금융설계 제안서가 D&T에서 배달됐다. 제안서에는 앞으로 1년동안 D&T에서 금융자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모든 건 무료였다.
▽‘좋은 직장’의 조건=“누가 우리의 돈, 건물, 브랜드를 남겨 놓고 직원들을 데리고 떠난다면 우리는 망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가지고 가더라도 직원들을 남겨둔다면 우리는 10년 안에 일어설 것이다.” 56년 전 P&G의 리처드 듀프리 당시 회장이 한 말이다.
기업의 힘은 ‘사람’에서 나온다. 또 ‘고용’은 기업의 존재이유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최고 재산인 직원들을 소중히 여기는 직장은 어떤 곳인가.
미국 경영전문잡지 포천과 공동으로 매년 ‘100대 일하기 좋은 기업’을 선정하는 인력관리 컨설팅회사 GPW의 로버트 레버링 회장은 “좋은 직장은 신뢰(Credibility), 존중(Respect), 공정(Fairness)의 3박자가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소 추상적인 이들 개념을 실제 직장 생활에 적용해보자. 신뢰는 경영진과 직원들이 대화할 수 있는 사내 의사소통 과정이 원활하게 작동될 때 생긴다. 존중은 회사가 원하는 바를 직원들이 잘 해낼 수 있도록 회사가 자원을 적절히 제공하는 것. 가장 대표적인 자원은 교육훈련 프로그램이다. 공정성은 회사의 경제적 성과를 직원들에게 올바로 나눠주는 보상체계와 복리후생제도를 말한다.
▽종업원 만족과 이윤창출의 함수관계=P&G는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답게 훌륭한 일터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웬만한 교육 의료 육아 여가 지원 프로그램은 기본. 직원들은 회장 이름인 AG 라플리의 이름을 딴 ‘AG 온라인’에 접속하면 언제라도 회장과 대화할 수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입양지원 서비스. 자녀를 입양하는 직원을 위해 5000달러의 입양 비용과 입양 후 1만5000달러의 양육비까지 회사가 대준다.
공장에서 일하는 장기근속 종업원이 많은 P&G는 50대 연령의 직원 복지에 신경을 쓴다. 퇴직에 심리적, 금전적으로 대비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 퇴직을 앞둔 직원들은 ‘라이프 애프터 P&G’ 토론 그룹에 참가하고 회사에 상주하는 퇴직상담 카운슬러에게 고민을 얘기한다. 매달 퇴직금 재테크 세미나가 열리며 노후 금융설계용 소프트웨어도 제공된다.
P&G에서 직원 한 명당 드는 복지비용은 그 직원이 받는 기본급보다 35% 정도 더 많이 책정돼있다. LH 쉘만 직원복지 담당이사는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아까워 못 한다”며 “우리는 유능한 인재를 유치하고, 잡아두기 위한 투자로 본다”고 말했다. 따라서 요즘과 같이 경기가 나빠져도 복지비용은 줄어들지 않는다.
옆에 있던 조 로바토 이사가 3년 전 설립한 P&G 보육센터를 예로 들며 거든다. 5∼10년 경력의 여직원 한 명이 회사를 떠날 경우 투입된 교육훈련비 등을 합쳐 15만달러 정도의 손실이 발생한다. P&G의 경우 여직원은 1만5000명으로 전체 직원의 40% 정도. 보육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여직원이 회사를 떠날 경우 회사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보육센터 설립에 든 350만달러와 연간 유지비 100만달러를 합친 것보다 훨씬 많다는 계산이다.
포천지 조사에 따르면 1998∼2002년 ‘100대 일하기 좋은 기업’의 연평균 주가 상승률은 9.86%인 반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기업의 주가 상승률은 ―0.56%인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에 ‘100대 일하기 좋은 기업’의 매출은 매년 14%씩 올랐지만 S&P 500 기업의 매출은 9% 오르는 데 그쳤다.
일하기 좋은 환경과 경영실적 중 무엇이 원인이며 무엇이 결과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렇지만 둘 사이에는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다.
▽좋은 직장은 ‘기업 브랜드’=증권회사 에드워드 존스는 올해 포천 ‘100대 일하기 좋은 기업’에서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에도 1위였다. 회계부정 스캔들로 미국의 다른 증권사들이 얼굴을 들지 못하는 마당에 이 회사는 최고의 직장에 선정되다니….
이 회사를 미국에서 가장 좋은 직장으로 만든 일등 공신은 교육 프로그램. 직원 한 명당 1년에 17주, 180시간이다. ‘100대 일하기 좋은 기업’의 연평균 교육시간이 43시간이니 이 회사 교육 프로그램의 강도를 알 만하다. 직원 한 명당 교육비용만도 연 5만∼7만달러에 달한다.
에드워드 존스가 교육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은 직원과 회사간의, 또 직원끼리의 거리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세인트루이스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대도시에 영업망이 몰려있는 다른 증권사들과는 달리 농촌과 소도시를 중심으로 1개 점포에 1명의 브로커를 두는 ‘1인 지점’ 방식으로 운영된다.
직원들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다 보니 조직 내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기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기회도 적어진다. 회사는 직원 교육을 위해 위성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한다. 본사는 자체 교육 프로그램을 제작해 위성으로 쏜다. 교육내용은 주로 회사의 경영방침과 금융실무, 리더십 배양, 스트레스 관리에 대한 최신 정보로 이뤄져 있다. 자연히 정보기술(IT) 투자도 많아진다.
에드워드 존스는 미국 대형 증권사들 가운데 유일하게 아직도 미공개법인으로 운영되고 있다. 내년 최고경영자(CEO)에 오르는 더글러스 힐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장부상 순자산 가치의 10배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기업을 공개할 것을 권유받고 있지만 우리는 계속 미공개법인으로 남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상장할 경우 단기 경영실적을 중시하는 소액주주들이 교육과 IT 투자를 위한 막대한 비용지출을 반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존스에는 지난해 19만명의 입사 지원자가 몰렸다. 월가의 대형 증권사를 마다하고 일하기 좋다는 이곳을 선택한 것. 이중에서 회사는 2000여명을 뽑았다.
힐 책임자는 “브랜드는 소비재 시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면서 ‘일하기 좋은 직장’은 우리의 기업 브랜드”라고 말했다.
종업원 만족도가 기업의 정체성으로 자리잡는 시대다.
신시내티·세인트루이스=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일하기 좋은 기업'에서는 ▼
경기 상황에 따라 ‘일하기 좋은 직장’의 조건도 변한다.
1999∼2000년 미국의 인터넷 열풍과 함께 증시가 활황세를 보일 때 스톡옵션은 좋은 직장의 최우선 조건으로 꼽혔다. 99년 포천 ‘100대 일하기 좋은 기업’ 중 66개 기업이 스톡옵션을 직원들에게 제공했다.
올해 순위에서 스톡옵션 제공 기업은 24개로 줄었다. 반면 경영자와 직원들 사이의 원활한 의사소통, 일명 ‘소프트 베니핏’으로 불리는 ‘일과 가정사이에 균형을 돕는 복지혜택’이 좋은 직장의 요건으로 부상하는 추세다. 일하기 좋다고 소문난 미국 기업들을 살펴보자.
▽열린 언로(言路)=CD 유통회사 CDW의 마이클 크래스니 사장은 모든 직원들에게 자신의 이름이 적힌 빈 봉투를 5개씩 나눠준다. 어려워 말고 건의 사항을 적어 보내라는 것. 컴퓨터 도매업체 잉그램 마이크로의 직원들은 제르 스테드 사장의 사내 직통번호를 알고 있다. 물론 사장이 직접 전화를 받는다.
비행기 부품업체 얼라이드 시그널의 로렌스 캐시디 회장은 직접 만든 개인 뉴스레터 ‘래리 레터스’를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무작위 추첨을 통해 선발된 직원들과 한달에 수차례씩 아침식사를 하며 애로사항을 듣는다. 증권회사 AG 에드워즈의 벤 에드워즈 사장은 월례 사내 라디오 연설에서 직원 건의사항에 대한 진행상황을 설명한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복지=CD드라이브 제조업체 퀀텀은 창문이 딸린 널찍한 가장자리 사무실은 하급 직원들에게 배정하고 매니저급 직원들의 자리는 중앙에 배치한다. 스타벅스는 전직원의 83%에 해당하는 비정규직 직원들에게도 스톡옵션을 제공한다.
모터사이클 제조회사 할리데이비슨은 3개월 무결근 공장 직원들에게 100달러씩 보너스를 지급한다. 건설업체 BE&K는 직원들의 개인 용도로 회사 비행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컴퓨터디자인회사 오토데스크는 ?殆便涌“?4년마다 6주씩 안식 휴가를 주고 애완견을 직장에 데리고 오도록 허용한다. 신용카드 대금업체 시노버스 파이낸셜은 사옥 벽돌에 직원 3000명의 이름을 새겨넣었다.
▽교육에 대한 재투자=루슨트 테크놀로지스는 대학 및 대학원에 다니는 직원들에게 연 7000∼9000달러의 학자금을 지원한다. 컴퓨터어소시에이츠 직원들은 입사할 때 32주간 사내 정보기술(IT)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한다. 컴퓨터 전공자라도 예외는 없다.
전자모터 제조업체 밸도르 일렉트릭은 공장 직원들의 문맹 퇴치를 위해 매년 중학교 3학년 수준의 어학시험을 실시한다. 세 차례 이상 떨어지면 개인교사를 붙여준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특별취재팀>
▽팀장=허승호 경제부 차장
▽팀원=김용기 신연수 이강운 공종식 정미경 박중현 김두영
홍석민 기자(이상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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