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민의 투자여행]<8>＂투자는 예측 아닌 대응의 게임＂

내 심리적 한계를 밑바닥까지 보여준 웬도버 사건 이후의 10년은 대략 이렇게 흘러간다.동생은 곧바로 졸업을 하고 귀국해서 제철회사에 입사한다. 그리곤 9년간 공장장 직(職) 말미에 회사의 배려로 보스턴에 MBA 유학을 간다. 졸업 기념여행 중 나와 일전을 겨루게 되는 곳이 바로 애틀랜틱시티. 미국 동부해안의 피서지이자 카지노 도시다. 그러고 보면 동생은 귀향 전엔 꼭 카지노에 인사를 가는가…. 어쨌든 그는 한 직장, 한 직책, 단조롭던 삶에서 마침내 변화를 꾀하던 참이었다.

나의 10년은 상대적으로 다채로웠는데, 간략히 요약해 본다면…. 그해 여름 유타에서 돌아와 다시 공부로 돌아간다. 딴 생각 품다간 졸업이 위태로운 곳이 시카고대학. 카지노니 블랙잭이니 까맣게 다 잊고 2년을 칩거한 끝에 학업을 마친다. 학위논문은 현물(現物)과 선물(先物)가격의 동시결정에 관한 것. 훗날 투자는 예측이 아닌 대응의 게임이라는 내 이론의 정립에 밑거름이 된다.

졸업 후 이젠 실무를 경험하기 위해 입사한 곳은 시카고 소재 선물회사. 바로 이곳에서 앞서 언급한 바 있는 내 돈, 남의 돈 각각 5000달러씩을 선물투자로 날린다. 시카고 외곽 졸리엣 강가에 리버보트 카지노가 생긴 것도 이 무렵. 여기서 또다시 처절한 패배를 겪는다.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갈 때마다 올인을 당했다.

그런 낙담 속에서 난 비로소 질문을 시작한다. 본질을 추궁하는 질문 말이다. ‘참 이상하다. 투자나 도박이나 객관적 승률은 50%인데 왜 난 100% 깨지지? 분명 뭔가 잘못됐는데 그게 뭘까….’ 알고 보면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뼈저리게 경험한 바 약점투성이인 인간심리, 동생을 통해 얻은 교훈, 가격의 속성에 대한 학문적 이해, 바로 그 속에 95% 해답이 있었던 거다.

그러나 그것들을 짜맞춰 그림을 완성하기엔 난 아직 ‘수부족(手不足)’. 이때 만난 분이 전설적인 선물트레이더 터틀(The Turtles)의 한 멤버인 키퍼다. 그러나 나머지 5%까지도 상세히 일러주신 그의 가르침은 그저 공허한 메아리. 워낙 하수라 도무지 알아듣질 못했으니까…. 96년 1월 난 여전히 무지한 채로 귀국해 증권회사에 들어간다. 그리고 1년 반, 계속되는 좌절로 다시 그의 도움을 구한다.

‘아하!’ 하며 마침내 무릎을 친 게 바로 이 두 번째 교육에서다. 웬도버에서 시작해 꼭 5년 만에 그림이 완성되는 것이다. 블랙잭 테이블에서 내 선생이자 천적(?)인 동생을 마주하는 건 그로부터 다시 5년 후 일이다.

김지민 시카고투자컨설팅 대표 cic2010@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