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에게 왜 투자하느냐고 물으면 90%는 ‘은퇴 설계(retirement plan)’라고 말한다. 결혼한 여성은 남편이 죽고 난 뒤 10년 동안 혼자 생활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돈을 모은다. 또 은퇴를 해도 이전 수입의 70∼80%는 쓰고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인의 은퇴 설계 수단은 크게 세 가지. 공적 연금인 사회보장제도(Social Security)와 사적 연금인 기업연금(401(k) 등)과 개인연금(IRAs·Indiv-idual Retirement Accounts 등)이다. 특히 사적 연금은 국가의 세금 감면 혜택을 통해 발전하면서 공적 연금을 보완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파이낸셜 어드바이저(FA)로 일하는 김윤성 미국 공인회계사는 “사적 연금에는 다양한 방법과 상품이 있지만 ‘연금 극대화(pension maximization)와 세금 최소화(tax minimization)’가 운용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기업연금, 이렇게 운용한다=미국인의 절반 이상은 회사가 지원하는 기업연금의 혜택을 받는다. 우선 한국의 퇴직금처럼 월급과 재직 연한에 따라 종업원이 퇴직할 때 수령하게 될 연금 액수가 미리 정해져 있는 ‘확정급부형’ 기업연금이 많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연금법 401(k) 조항이 연금 가입자에게 유리하게 개정되면서 이를 활용하는 고객이 늘고 있다. 예를 들어 이 개정 조항의 대표 상품인 확정갹출형(피고용자와 고용주가 매년 일정액을 갹출해 종업원별로 개설된 계좌에 넣어 운용한 뒤 원금과 수익금을 퇴직연금으로 지급) 기업연금제도를 채택한 회사가 크게 증가했다.
김 회계사는 수입에서 연 1만2000달러까지를 401(k) 상품 계좌에 넣는다. 이 돈에는 소득세가 붙지 않는다. 회사는 김씨 연봉의 2.5%까지를 퇴직출연금 명목으로 김씨의 계좌에 넣어준다. 회사도 이 돈에 대해 법인세를 내지 않는다.
물론 김씨가 59.5세가 돼 연금을 탈 때는 세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그때의 소득은 지금보다 적을 것이 분명하므로 낮은 세율이 적용된다.
김씨는 이 돈을 회사가 추천한 몇 개의 펀드에 넣어 운용한다. 회사를 옮길 때 계좌를 함께 옮길 수 있고 회사가 도산해도 자신의 연금을 지킬 수 있다.
그러나 자산을 운용한 결과 손해가 날 위험은 종업원 자신이 진다.
▽은퇴 후 또 다른 대안인 개인연금(IRAs)=미국인들은 공적 연금과 기업연금만으로는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하는 데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용하는 것이 개인연금.
개인들은 1975년부터 IRAs라는 개인연금계좌를 갖게 됐다. 401(k) 등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이 대상이다.
계좌는 은행 투자회사 보험회사 등에 튼다. 여기에 넣은 돈과 수익금에는 70.5세가 넘어 꺼내 쓸 때까지 세금이 붙지 않는다. 2003년 현재 소득공제가 되는 연간 저축 한도액은 3000달러. 2008년까지 5000달러로 늘어난다.
1998년 미국 의회는 ‘로스(Roth) IRAs라는 새로운 종류의 개인연금을 허가했다. 저축 한도는 기존 IRAs와 같지만 불입금에 대해 소득공제 혜택이 없다. 그러나 수익금에 세금이 붙지 않고 인출할 때도 세금이 없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파이낸셜 플래너(FP)로 활동하는 제니퍼 김(여)은 “어떤 IRAs에 가입할지는 개인별 소득과 나이, 401(k) 가입 여부에 따라 다르다”고 말했다.
우선 소득세율이 낮을수록 ‘Roth IRAs’가 유리하다. 가입자의 소득 한도도 높아서 상대적으로 소득이 많은 사람도 이용할 수 있다. 401(k)에 가입한 사람도 가입할 수 있다.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인을 위한 IRAs=1978년 간이종업원 연금인 SEP(Simplified Employee Pension) IRAs라는 제도가 도입됐다. 영세 사업자가 종업원에게 401(k)와 비슷한 퇴직연금을 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
종업원을 위한 저축 유도 상품인 SIMPLE(Savings Incentive Match Plan for Employees) IRAs도 비슷한 제도로 세금혜택을 주고 있다.
▽어떻게 운용하는지가 중요=기업연금이나 개인연금을 통해 세금혜택을 받더라도 돈을 잘 운용하지 못해 수익을 내지 못하면 큰 의미가 없다.
그러나 많은 미국인들은 20년 동안 주식시장이 오르자 401(k) 자금을 주식형 펀드에 모두 투자했다가 2000년 이후 주식시장이 가라앉으면서 모아둔 원금을 잃는 일이 일어났다.
일부 기업은 종업원의 401(k) 계좌 상품에 돈 대신 자사주를 불입했고 종업원들도 자사주에 투자했다. 따라서 엔론처럼 기업이 망하면 종업원도 망했다.
김 회계사는 “세금을 인센티브로 한 연금제도 자체는 아주 훌륭하지만 모은 자산을 잘 운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미국의 기업연금 제도 비교 | ||
확정급부형 | 확정갹출형(401(k)) | |
불입자 | 고용주 | 고용주와 종업원 |
불입액 | 회사가 결정 | 종업원은 연 1만2000달러까지 불입 가능 회사는 연 4만달러 한도에서 종업원 월급의 100% 이내 |
미래 급부액 | 확정 | 미정 |
투자위험 | 고용주가 부담 | 종업원이 부담 |
연금관리방식 | 기금을 만들어서 관리 | 종업원 개인 계좌에 관리 |
지금방법 | 59.5세부터 지급 중도 인출 때 10% 벌금 | 59.5세부터 지급 중도 인출 때 10% 벌금 |
개인이 스스로 마련하는 IRAs 비교 | ||
전통적인 IRAs | Roth IRAs | |
가입자격 | 70.5세 미만, 근로소득자 고용주가 제공하는 은퇴 계획에 참여하지 않았거나 가입했지만 저소득인 종업원 | 나이제한 없음 고용주가 제공하는 은퇴계획과 관련 없이 가입 가능 |
불입금 세금공제 혜택 | 있음 | 없음 |
수익에 대한 세금지연 혜택 | 있음 | 있음 |
연금 분배때 세금면제 혜택 | 없음 | 있음 |
반드시 분배해야 하나 | 70.5세 이후 반드시 분배 | 본인 사후 분배도 가능 |
자료:김윤성 미국공인회계사 |
로스앤젤레스=신석호기자 kyle@donga.com
▼새 은퇴자금 '변액보험' ▼
직장인인 조지프 데이비드(55·미국 로스앤젤레스)는 노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표적 기업연금인 401(K) 계좌에 연간 한도액을 모두 채우며 돈을 모았다. 또 틈틈이 모은 5만달러를 양도성예금증서(CD)에 넣어두었다.
데이비드씨는 이 돈이 노후자금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CD에 투자한 5만달러를 주식 등 수익성이 큰 자산에 투자하고 싶지만 주가 폭락으로 원금을 날리는 위험은 피하고 싶다.
마를린 조앤(50·여·미국 시애틀) 역시 회사 401(K) 계좌에 꾸준히 돈을 모아 왔다. 그는 자신이 은퇴한 뒤에도 이 돈으로 수익을 낼 방법을 찾고 있다. 또 자신이 죽은 뒤에도 남편과 딸이 연금 형태로 이 돈을 받았으면 한다.
데이비드씨나 조앤씨 같은 중장년 투자자에게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연금 상품이 바로 변액보험(variable annuities)으로 보험회사만 취급할 수 있다.
기업연금과 개인연금처럼 불입금에 대해 소득공제 혜택은 없지만 투자로 인한 수익금에 대해서는 연금을 수령할 때 상대적으로 낮은 세금을 낸다.
보험사는 이 돈을 주식과 채권 펀드 등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추구한다. 물론 투자 대상과 시장의 상황에 따라 수익률이 변동하지만 많은 보험사들이 최저 수익을 보장한다.
언제 얼마나 불입하는지와 언제 어떻게 연금을 지급하는지는 계약에 따라 다르다. 연금 형식으로 생전에 돈을 받을 수도 있고 자신이 죽은 뒤 가족이 수령할 수도 있다.
김윤성 미국공인회계사는 “투자와 원금보장, 보험의 기능을 합친 상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계약한 일정 기간 중에 돈을 찾으려면 벌금을 낸다는 조항이 따라붙는다. 또 보험사와 자산을 운용하는 회사가 이중으로 수수료를 챙겨 비용이 비싼 것이 흠이다.
로스앤젤레스=신석호기자 kyle@donga.com
▼프랑스인의 노후 재테크 ▼
“노후 대비는 결국 인생을 어떻게 조직해 나가느냐에 관한 문제입니다. 저요? 기업연금의 일종인 PEA(Plan d'Espargne en Action)나 PEE(Plan d'Espargne Entr-eprise) 등을 통해 주식에 간접투자하고 있죠. 주식시장은 계속 안 좋았지만 장기적으로 내다보면 투자해 볼 만해요.”
프랑스 크레디리요네(CLSA) 그룹 프라이빗뱅킹(PB) 대표인 카롤린 스코라일(40·여). 파리 한복판 빅토르 위고가(街)의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털털하게 자신의 재테크 전략을 공개했다.
10여년간의 재테크 상담 경력자답게 자신의 노후 대비도 꼼꼼하게 준비하고 있다.
세금 부담이 큰 프랑스에서는 절세(節稅)가 성공적인 자산 관리의 핵심 포인트. 월급의 25%가량을 회사에서 떼고 남은 돈의 25%에서 최대 65%까지 다시 개인소득세로 내야 하기 때문에 세금만 줄여도 큰 돈을 버는 셈이다. 이자나 배당금 등 금융소득에 붙는 세금도 한국보다 훨씬 높은 26% 수준.
스코라일 대표가 7세, 10세짜리 두 아들의 학자금을 위해 선택한 연금형 생명보험과 PEA 등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상품이다. 8년 동안 돈을 묶어 놓아야 하지만 어차피 먼 장래를 위한 투자여서 별로 신경 쓰지는 않는다.
프랑스의 기업연금과 보험은 대부분 자신이 직접 펀드를 선택해 굴릴 수 있다. 그는 몇 개 펀드를 고를 수 있는 생명보험의 경우 모두 100% 주식형으로 선택했다. 단 위험부담이 큰 직접 투자는 시장의 흐름을 읽을 정도만 하자는 생각에 5000유로(약 700만원) 정도 넣었다.
이런 투자의 틀은 고객들과의 상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를 바탕으로 고객들의 연령과 자산 규모, 투자 성향에 맞는 각양각색의 포트폴리오를 짜 준다. 주요 고객은 자산 10억원 이상의 부자들이지만 노후 준비 과정과 이론은 중산층 가정도 결국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젊었을 때는 자산관리 경비를 아끼는 절세와 집값 해결 방안을, 50대 이상이 되면 자산을 안전한 쪽으로 옮기는 데 관심을 둬야 해요. 특히 파리는 집값과 임대료가 비싸니까 미리 사두는 방안을 고려해야 합니다.”
스코라일 대표는 40대 고객부터는 본격적으로 자산을 부풀리는 방법을 추천해 준다. 상속세 면제 등 세금 혜택이 많은 생명보험, 투자시 연금액 산정에 필요한 포인트 적립까지 동시에 할 수 있는 ‘Madeline life annuity’ 등이 투자 대상이다.
50대부터는 원금이 보장되는 보험 상품이나 채권에 투자한다. 60대에는 부동산에 투자해 임대료를 받거나 프랑스 리츠상품의 일종인 ‘SCPI’ 등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설명했다.
파리=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마이너스 금리시대 실전재테크 Ⅱ부-해외편 시리즈 순서>
1. 부모와 함께 하는 10대 재테크
2. 외화채권에 눈 돌리는 일본인
3. 입맛에 맞게 고르는 은퇴 후 생활설계
4. 못 믿을 국가, 노후 자금은 내가 직접
5. 나의 사전에 정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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