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쟁점은 우루과이라운드(UR) 이후 추가적인 농산물 무역 자유화. 점잖은 외교적 수사(修辭) 속에 날카로운 칼들이 수시로 튀어 나와 상대의 심장을 겨누었다.
그 이전만 해도 한국의 협상 전략은 흔히 ‘3S’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돌았다. 국제회의장에 나서면 Smile(미소), Silent(침묵), Sleeping(졸음)으로 일관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대표단은 달라져 있었다. 전면적인 개방을 밀어붙이는 미국과 케언스그룹(농산물 수출국), 농업의 비(非)교역적 기능을 강조하는 유럽연합(EU), 특혜 확대를 주장하는 개발도상국 그룹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했다.
회의가 진행되면서 협상의 기본방향은 시장개방 확대와 수출보조금 폐지를 근간으로 하면서도 각국 농업의 특수한 현실을 인정하되 개도국에 대한 우대조치를 보장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 갔다.
한국으로서는 기대치 않았던 수확이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주도면밀하게 작성한 수천 쪽에 이르는 협상전략 보고서의 덕택이었다.
채욱(蔡旭) KIEP 부원장의 회고다.
“도하개발어젠다(DDA)가 그 정도 수준에서 일단락된 것은 한국대표단의 사전 조정 작업의 덕이 컸습니다. UR 협상 때와는 달리 일방적인 열세를 만회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그는 낙담했다. 피 말리는 전투를 치른 그에게 칭찬은커녕 비난이 쏟아졌다. 한국 농업을 송두리째 넘겨줬다는 것이었다.
▽야누스의 눈물=KIEP는 무역 통상 국제금융 국제투자 부문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국책 연구기관이다. 이를 위해 안으로는 수입의 불가피성을, 밖으로는 국내 산업 보호를 설명해야 한다.
한 목표를 놓고 두 가지 논리를 내놓는 셈이다. 이 때문에 KIEP 직원들은 자신들을 두 얼굴을 지닌 야누스로 표현한다.
중국과의 ‘마늘분쟁’ 때 일이다. KIEP는 국내 농민들에게는 농업구조조정이 더딘 탓에 후진국형 농산물 분쟁이 반복된다고 설득했다. 반면 중국에는 한국 농업의 현실을 설명해야 했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에서도 농업 개방은 어쩔 수 없는 대세(大勢)라는 점을 설득하면서도 사과 배 등 핵심 품목을 교역 대상에서 제외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어느 쪽에서도 칭찬을 받지 못하는 게 교역 협상입니다. 이익집단의 항의를 받는 건 일상생활이 됐지요.”(송유철·宋有哲 연구위원)
▽한국 속의 세계=KIEP는 89년 8월 설립됐다. 소속원은 108명. 이 중 연구직 박사는 38명이다.
DDA나 FTA 이외에 한중일 경제협력, 동아시아 금융협력, 북한 개방 등의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최근엔 중국 경제에 무게를 두면서 중국 현지의 유일한 외국정부 연구소를 두고 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2001년부터 KIEP 원장이 APEC 산하 경제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다.
각국의 경제를 포함한 정치 사회 문화에 대한 연구도 KIEP의 몫이다. 중국팀과 일본팀, 유럽팀, 미주팀, 동·서남아팀을 운영하고 있다.
맡고 있는 분야가 광범위해 정부 평가 때 ‘산만하다’는 억울한 평가를 들을 정도다.
▽KIEP의 두뇌=안충영(安忠榮) 원장은 작년 2월부터 KIEP를 이끌고 있다.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 동북아 경제 발전론에 조예가 깊다. 집무실 책상에 항상 각종 논문과 서류가 수북이 쌓여 있어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부하 직원들의 푸념을 들을 정도로 연구량이 많다.
채 부원장은 국제통상 전문가다. 반덤핑,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분야의 국내 최고수 중 하나. 93년 UR에서부터 DDA에 이르기까지 통상교역 부문에 모두 관여해 온 산증인이다.
훤칠한 외모의 김원호(金元鎬) 연구조정실장은 KIEP의 살림을 도맡고 있다. 중남미 정치경제 전문가로 역대 대통령이 중남미를 방문할 때마다 자문역을 맡아왔다. 옛 연합통신 기자 출신으로 한때 멕시코에서 교수를 지냈다.
김박수(金博洙) 세계지역연구센터 소장은 유럽 통상정책을 전공했다. 지금은 한중일 제조업 구조에 관심을 두고 있다. 90년대 초 ‘세계화’라는 화두를 제안했을 만큼 국제감각이 뛰어나다.
이창재(李昌在) 동북아경제협력센터 소장은 지난해부터 추진 중인 ‘동북아 경제중심’ 프로젝트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경력이 특이하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캐나다로 건너간 뒤 다시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학부와 박사과정을 마쳤다. 학부에서는 사회주의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박사과정에서는 소련 경제 비판론을 연구했다. 본인은 “역마살(驛馬煞)이 있어서”라고 말하지만 타고난 학자라는 게 주위의 설명이다.
조종화(曺琮和) 국제거시금융실장은 동아시아 통화통합과 공동 채권시장 설립 등을 주창한 금융전문가.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전략가로 통한다.
최낙균(崔洛均) 무역투자정책실장은 산업연구원(KIET) 출신으로 2000년 KIEP에 합류했다. 전공은 무역·통상정책. 한때 통상산업부 자문관으로 활동해 정책 실무에 밝다.
김상겸(金尙謙) APEC 연구컨소시엄 사무국장은 국제금융에서 출발해 지금은 APEC이나 DDA와 관련한 모든 업무를 맡고 있다.
왕윤종(王允鍾) 선임연구위원은 국제금융 부문의 내로라하는 이론가로 꼽힌다. 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적극적 성격.
김준동(金準東) 선임연구위원은 DDA에서도 법률 교육 등 서비스 협상 분야의 이론적 대가로 알려져 있다.
노재봉(魯在峯) 선임연구위원은 김상겸 국장과 함께 APEC을 담당한다. 경제부처 공무원들과의 폭넓은 인맥을 자랑한다. 설득력을 갖춘 논리로 상대로부터 쉽게 동의를 이끌어 낸다.
손찬현(孫讚鉉) 선임연구위원은 공대 출신으로 산업정책 전문가다. 갖가지 학문 분야를 넘나드는 만물박사로 통한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KIEP 산하기관 KEI는 ▼
올 3월 한 인터넷 신문이 미국 정부가 북한 영변 핵시설을 기습폭격할 것을 검토했다고 보도해 충격을 줬다. 당시 제보자는 김진표(金振杓)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김 부총리는 “(미국의 북한 폭격 타진은)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고 우리 정부가 설립한 미국 내 한국경제연구원(KEI)의 조지프 윈더 소장이 미국 내에 떠도는 이야기를 전해준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김 부총리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북폭 타진설에 대한 논란은 한동안 끊이지 않았다.
김 부총리에게 이처럼 ‘깊숙한’ 이야기를 해준 KEI는 어떤 곳일까. KEI는 워싱턴에 있는 KIEP의 산하기관이면서 미국에서는 순수 한국학 연구단체로 등록된 학술기관이다.
하지만 실제 하는 일은 ‘경제 국가정보원’으로 통할 만큼 미국 내 현안 정보에 깊이 닿아 있다. 또 미국과의 쌍무관계에서 한국 정부의 유일한 비공식 대화 창구이기도 하다.
실제 대통령을 포함해 정부 고위 관료나 국회의원이 미국을 방문할 때 만나는 주요 현지 인사들은 대부분 KEI가 주선한다.
또 한국 정부에 미국 내 현안을 일일 리포트 형식으로 전달하고 있으며 연간 5, 6회 한국 관련 세미나를 개최한다.
한국의 경제 외교 안보현황을 미국 정부에 전달하는 것도 KEI의 몫이다. 이를 통해 미국 의회와 정부 학계에 지지기반을 확충한다는 목표다.
인원은 7명. 모두 미국인이다. 윈더 소장은 주일(駐日) 미국대사관의 공사를 지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KEI의 정보 수집 능력이 대사관을 넘어서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윈더 소장이 김 부총리에게 북폭 타진설을 알려준 것도 이 같은 정보력에 기인했다는 얘기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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