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소세는 밍크코트와 같은 ‘사치품’에 붙는 세금이다.
1가구 1주택자인 귀하가 집을 팔 때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는가. 1가구 1주택에 대한 비(非)과세는 수십년간 불변의 진리로 여겨 왔는데도 말이다.
세금을 매기고 걷는 일은 재정경제부와 국세청이 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이론과 명분을 제공하는 건 한국조세연구원의 몫이다. 고상하기로 치면 최고로 꼽히는 박사 전문가들이 국민 호주머니를 들여다보며 돈을 넣고 빼고를 결정한다는 것은 왠지 어색하다.
콜라에 붙는 특소세는 1999년 조세연구원의 건의로 폐지됐다. 또 제한적으로 실시되는 1가구 1주택에 대한 양도세 부과는 조세연구원의 오랜 고집이었다.조세연구원은 이처럼 국민을 기쁘게도, 화나게도 하는 세금을 연구하는 곳이다.》
▽세금으로 보는 세상=세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90년대 중반 음성자금과 소득격차가 문제되자 조세연구원은 ‘금융소득종합과세’를 들고 나왔다.
당시까지는 사채이자를 뺀 이자(금융소득)는 합산과세하지 않고 20% 정도의 세율로 원천징수했다.
하지만 부부가 금융기관에서 받는 모든 소득이 4000만원을 넘으면 초과분을 근로소득, 사업소득, 부동산 임대소득 등 다른 소득과 합산해 과세토록 했다. 이 때문에 시중 뭉칫돈이 세금 회피를 위해 분리 예치되는 등 큰 파장을 일으켰다.
세금이라는 수단으로 세무행정이 권력을 남용하면 조세연구원이 견제한다. 97년 연구원이 제안해 만든 ‘납세자 권리헌장’이 대표적이다. 주요 내용은 세무조사 착수 전에 납세자에게 이를 알리고 구체적인 탈세 제보가 있는 경우 등을 제외하고는 세무조사 대상으로 선정하지 않는다는 것.
최근 들어서는 경기 부양, 부동산 경기 진정, 계층간 소득 분배 건전화 등에도 조세연구원이 나선다. 법인세 인하, 재산세 과표 인상, 상속세 포괄주의 등을 검토하고 있다.
“조세는 한 나라를 전복(顚覆)시킬 수도, 새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독립전쟁, 프랑스혁명 등 굵직한 사건들의 발단은 세금이었습니다.”(송대희·宋大熙 원장)
▽연말정산에서 국제통상까지=조세연구원은 92년 개원했다. 박사급 연구인력 25명을 포함해 78명으로 구성돼 있다.
연구 정책보고서 외에 1년에 두 번 ‘재정연구’라는 학술지를, 현안 분석을 중심으로 하는 월간 ‘재정포럼’을 발간하고 있다.
3개 팀인 연구부서는 각각 △개인소득세, 법인세, 국가간 조세, 사회보장제도 △소비세, 재산관련 세제, 관세, 지방세 △예산제도 및 정책, 재정정책, 금융 관련 세제, 세수 추계 등을 맡고 있다.
국민의 연말정산과 직결되는 세제 세정은 물론 나라끼리 통상 협정을 맺을 때의 조세 체계 정비, 파생금융상품 거래에서 생긴 이익에 대한 과세 등 경제활동이 있는 모든 곳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농어촌 지원이나 교육 문제도 조세연구원의 관심사다. 국가 재정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실제 논농업직불제나 초중고등학교 교원을 지방직 공무원으로 전환하는 정책에도 조세연구원이 참가했다.
▽조세연구원의 젊은 두뇌들=원장과 부원장을 뺀 연구인력 23명의 평균 나이는 40세. 다른 국책 연구소에 비해 젊다. 그만큼 역동적이라는 게 조세연구원의 자랑이다.
박사학위를 받은 대학은 미국 위스콘신대가 4명으로 가장 많고 펜실베이니아대와 컬럼비아대가 뒤를 잇는다. 위스콘신대가 많은 건 재정학 분야가 강점으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
사령탑을 맡고 있는 송대희 원장은 유연한 사고(思考)가 장점. 행정고시 12회 출신으로 옛 농수산부에서 잠깐 근무하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연구자로서 길을 걸었다.
전승훈(全承勳) 부원장도 행시(13회) 출신이다. 옛 경제기획원에서 잔뼈가 굵어 큰 틀에서 경제를 보는 눈을 갖고 있다는 평가다.
김정훈(金正勳) 연구조정부장은 지방자치 전문가. 지방재정과 교육재정 등을 연구하고 있다. 지금은 연구원 살림살이를 도맡고 있다.
박기백(朴寄白) 연구1팀장은 일 잘하는 재간둥이로 통한다. 정부 부채 관리와 재정적자 등을 연구한다.
이명헌(李明憲) 연구2팀장은 농업정책에 특화돼 있다. 현재 농어촌특별위원회에 참가하고 있다.
최준욱(崔濬旭) 연구3팀장은 외국인 투자 때 이중과세 협약 등 국제조세와 재정 전반을 맡는다. 실무 경험을 쌓기 위해 99년부터 2년간 기획예산처에서 일한 적도 있다.
박형수(朴炯秀) 동향분석팀장은 세금이 아닌 거시경제를 담당한다. 조세정책의 방향과 근간을 제공하는 역할이다. 최근 재정경제부가 내놓은 추경예산 편성안이 그의 작품.
김진수(金珍洙) 선임연구위원은 법인세 중에서도 연결납세 등 제도 분야에 강점을 갖고 있다.
홍범교(洪範敎) 선임연구위원은 금융을 전공했다. 금융 관련 조세나 전자상거래 과세 방안 등을 다룬다.
김재진(金裁鎭) 연구위원은 저소득층을 위한 정부 재정의 역할 등을 연구한다. 소득세에 강점을 갖고 있다.
노영훈(魯英勳) 연구위원은 부동산 정책의 대가(大家). 재산세 현실화, 1가구 1주택 비과세 요건 강화 등을 제안해 정책에 반영시킨 바 있다. 달변가로 통한다.
성명재(成明宰) 연구위원은 계량경제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세수추계팀장을 맡고 있다. 소득 분배에 관심이 많다. 차분하고 친절한 말솜씨가 인상적이다.
손원익(孫元翼) 연구위원은 준(準)조세와 비영리법인의 법인세를 연구하고 있다.
안종석(安鍾錫) 연구위원은 국가간 조세와 지자체의 교육 자치 등이 관심사다.
한상국(韓相國) 연구위원은 연구원에서 유일한 법학박사다. 상속세 포괄주의처럼 법률적 논쟁이 있는 분야를 다룬다.
현진권(玄鎭權) 연구위원은 연구원의 ‘스타 플레이어’ 중 한 사람. 정부 지출과 소득분배, 국세행정 개혁 등 굵직한 이슈를 처리했다. 정부에 대한 직설적인 고언(苦言)도 서슴지 않는 행동파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조세연구원 현황 ▼
재정학에서 추구하는 이상적인 국가재정은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균형재정이다. 그렇다면 재정학 전공자들이 대부분인 조세연구원의 살림살이는 어떨까.
눈에 띄는 대목은 1999년과 2000년 국무총리 산하 경제사회연구회가 14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을 대상으로 한 경영평가에서 최우수 기관으로 선정됐다는 것이다. 조세연구원측은 2001년과 2002년에도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다른 연구기관과의 형평성을 맞추다 보니 순위에서 밀렸다고 귀띔했다.
조세연구원의 경영은 인력 관리에서 두드러진다.
“이 정도가 딱 좋습니다. 인력 충원은 필요없습니다.”(송대희 원장)
민관(民官)을 막론하고 인력을 보강해 준다는 데 마다할 곳은 없다. 하지만 조세연구원은 사양하기 바쁘다. 이유는 효율적인 통제가 어렵다는 것.
조세연구원의 총원은 78명. 이 가운데 원장과 부원장을 포함한 박사급이 23명이다. 박사급 연구인력이 30명을 넘어서면 연구의 질을 측정하기 어렵고 조직 비대화에 따른 관료주의가 생기기 마련이라는 게 연구원의 지론이다.
예산관리도 철저하다. 조세연구원은 수입을 늘리는 데 약점을 갖고 있다. 세금과 관련된 연구를 하다 보니 민간기업이나 단체에서 용역을 수주하기 어렵다. 어떻게 하면 세금을 덜 낼 수 있는지를 의뢰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 재정관리 연구용역 등을 통해 부족한 운영비용을 충당하며 살림살이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조세연구원이 짭짤한 이익을 보는 분야가 있다. 바로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있는 자체 사옥이다.
외환위기로 부동산값이 폭락한 99년 92억원에 산 10층짜리 건물이 지금은 200억원이 넘는 ‘노다지’로 변신한 것이다.
당시 사옥 매입을 주도했던 노영훈 연구위원은 “재정학 박사들이 전공분야를 살려 자산 관리에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 사례”라며 웃었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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