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물 목록▼ |
- <5>정치는 5000달러 수준 |
더구나 미국에서 한국으로 2만5000달러를 송금한 데 대해 한국의 은행에서 “사용처가 분명치 않으면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할 수도 있다”는 경고까지 받았다.
테라스 회장은 “돈을 보낸 나라에서는 아무 말도 않는데 돈을 받은 나라에서 세무조사 운운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한국이 외국인에게 투자 문호를 개방한 게 맞느냐”고 반문했다.
▽“한국, 개방국가 맞아?”=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은 올 5월 세계경쟁력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은 인구가 2000만명 이상인 30개국 가운데 15위였다.
IMD의 세부평가 항목에는 ‘외국인의 비판을 잘 수용하는지’와 ‘외국기업을 입법에서 차별하지 않는지’ 등 개방에 대한 태도를 평가하는 항목도 들어 있다. 한국은 두 항목 모두 ‘꼴찌’였다.
한국의 대기업도 “외국기업에 비해 ‘역(逆)차별’을 받고 있다”는 불만이 많다. 하지만 외국기업 가운데 ‘특혜’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다.
외국계 A보험사의 B회장은 “금융감독 당국에 신상품 승인을 요청하면 감독 당국이 한국계 보험사에 검토를 의뢰해 상품정보를 유출시키기 때문에 선진형 신상품 도입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미국계 화학회사의 C사장(호주 출신)은 올해 초 반미(反美) 시위대에 언어폭력과 함께 신체적 공격 위협을 받은 뒤 한동안 가족의 외출을 자제시켰다. C사장은 “한국사회엔 전반적으로 외국인에게 배타적인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부진한 외자유치=주한미상공회의소(AMCHAM)가 지난해 34개 다국적기업의 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장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한국의 비즈니스 환경은 중국 홍콩 싱가포르 일본에 모두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가가 나쁜 만큼 외자유치 실적 또한 주요 경쟁국에 비해 부진하다.
2000년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외국인직접투자(FDI) 누적액은 9.3%에 그쳐 중국의 32.1%와 싱가포르의 108.4%에 크게 못 미쳤다. 더구나 외국인직접투자는 2001년부터는 줄어드는 추세다.
한국이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할 저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한국을 ‘FDI 유치 잠재력은 크지만 성과가 부진한 나라’로 평가한다. 반면 중국은 ‘잠재력은 작지만 성과가 큰 나라’, 싱가포르와 홍콩은 ‘잠재력도 높고 성과도 높은 나라’로 분류하고 있다.
▽‘개방 특구’마저 흔들린다=한국 정부가 중국 싱가포르 홍콩 등 ‘FDI 블랙홀’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마련한 것이 ‘경제자유구역’이다.
이익집단의 반발과 국민정서에서 국가 전체의 비즈니스 환경을 바꾸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어느 한 지역만이라도 규제를 대폭 풀고 특혜를 줌으로써 ‘경쟁력’을 갖도록 해보자는 것.
그러나 지금 분위기에서는 경제자유구역마저 성공할 가능성이 밝지 않다.
노동계는 경제자유구역에서 유급 월차, 생리휴가를 폐지하고 일부 파견근로제를 도입키로 한 데 대해 수시로 파업이나 시위로 반대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유급 월차, 생리휴가는 물론 파견근로에 대한 규제가 없다.
투자 유치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규제도 적지 않다.
인천시는 송도지역에 미국 존스홉킨스대학병원과 MD앤더슨암센터 등 유명 병원을 유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그러나 인천시의 한 관계자는 “법적으로 경제자유구역 안에 있는 외국 병원은 한국인 출입이 금지돼 있다”며 “수익성도 없는 곳에 누가 병원을 지으려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개방 없이 도약할 수 있나=한국개발연구원(KDI) 한진희(韓熙) 연구위원은 “한국이 2012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넘기 위해서는 매년 생산성을 2%씩 높여야 한다”면서 “연간 생산성 2% 높이기는 2차대전 직후 독일과 일본을 제외하고는 전례가 없을 만큼 어려운 과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는 제도 개선과 함께 대외개방이 필수”라며 “개방을 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장한 나라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최병일(崔炳鎰) 교수는 “전체 고용의 70%를 차지하는 서비스산업의 경쟁력을 키우지 않고서는 한국경제의 전체 경쟁력을 더 이상 향상시키기 어렵다”면서 “서비스 시장 개방을 통해 세계 유수기업과 경쟁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정경제부 박병원(朴炳元) 경제정책국장은 “한국의 고부가가치산업은 세계무대에서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라며 “세계 일류기업과 제휴나 경쟁을 하지 않으면 ‘싹’을 틔울 수 있는 기회조차 없다”고 말했다.
▼일찍 門연 홍콩-싱가포르 2만달러시대 먼저 진입▼
아시아에서 일본을 제외하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만달러를 넘는 나라는 홍콩과 싱가포르다.
두 나라의 공통점은 아시아에서 가장 빨리, 가장 폭넓게 경제를 개방했다는 점이다.
한국수출입은행이 펴낸 ‘세계 국별 편람’에 따르면 2002년 현재 1인당 GDP는 △홍콩 2만3950달러 △싱가포르 2만1119달러 △마카오 1만3795달러 △대만 1만2512달러 △한국 9904달러였다.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GNI)은 1만13달러지만 1인당 GDP는 이보다 낮다.
이어 말레이시아 태국 몰디브가 1000달러 이상이고 나머지는 모두 1000달러 미만이다.
대만 한국 말레이시아도 홍콩과 싱가포르에는 못 미치지만 경제 개방에 앞장서 온 나라에 속한다.
반면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방글라데시 등 500달러 미만인 국가들은 개방에 가장 소극적 태도를 보여 온 나라들이다.
이처럼 1960년대 이후 아시아에서 경제 개방과 성장은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개방경제와 폐쇄경제의 차이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남북한이다.
1970년 남한과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남한이 249달러, 북한이 215달러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무역총액은 남한이 28억달러, 북한이 7억달러로 4배 차이였다.
남한은 70년대에 차관을 통한 공업화, 80년대에 상품시장 개방, 90년대에 자본 및 서비스시장 개방을 추진하는 등 단계적으로 개방 강도를 높여 왔다. 하지만 북한은 계속 사회주의 폐쇄경제를 유지했다.
2000년 남한의 무역총액은 3327억달러로 북한보다 169배 많았다.
남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 격차는 80년만 해도 약 2배에 불과했으나 90년에는 5.2배로 벌어졌다.
또 95년에는 그 격차가 처음으로 10배를 넘었다. 지난해에는 남한이 1만13달러, 북한이 762달러로 13.1배로 격차가 커졌다.
▼외국인이 본 한국-한국인▼
지난해 주한미상공회의소(AMCHAM)는 한국이 동북아 경제 중심 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5대 조건으로 노동유연성 확보, 외환규제 완화, 세금 감면, 영어능력 향상, 개방적 국민의식을 제시했다.
AMCHAM은 이들 조건 중 개선에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한국인의 배타성을 꼽았다. 이 단체가 아시아 5개국의 외국인에 대한 인식 수준을 조사한 결과 싱가포르와 홍콩은 ‘매우 좋음,’ 일본과 중국(상하이)은 ‘좋음’에 해당한 반면 한국은 ‘나쁨’이었다.
주한 외국인들은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자유구역이 여러 가지 경제적 혜택을 가져다 줄 것으로 보면서도 외국인만 특정 지역에 따로 모아놓을 경우 한국인들의 배타성이 더 커질 것을 우려한다. 윌리엄 오벌린 AMCHAM 회장은 “외국인들은 ‘게토(ghetto·집단거주지역)’를 원하지 않는다”면서 “한국인과 외국인이 접촉할 기회가 많아져야 서로에 대한 인식도 좋아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국인들의 폐쇄성은 외국인들의 생활여건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국내 거주 외국인 122명을 대상으로 주택, 의료, 행정, 교육, 환경, 교통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5점 만점에 3.5점을 넘는 분야는 하나도 없었다. 특히 교통과 환경 분야에 대한 만족도가 낮았다.
나이젤 버든 듀폰코리아 사장은 “한국에서 자녀들을 외국인학교에 입학시키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고 털어놨다. 학교가 입학 통보를 너무 늦게 해줄 뿐 아니라 ‘늑장 행정’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것.
한국 싱가포르 홍콩 태국 등 아시아에서 14년 이상 거주한 어느 외국 기업인은 “한국이 가장 생활하기 어려운 나라”라고 지적했다.
버든 사장은 “외국인들이 한국시장을 잠식한다는 부정적 인식부터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권순활 경제부 차장(팀장)
천광암 정미경 김광현 이은우
신치영 홍석민 이헌진 고기정 기자(경제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