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입사 5년차인 삼성전자 박모 대리(33). 그는 요즘 우울하다.
실적이 좋은 사업부에서는 초과이익분배금(PS)으로 연봉의 30∼50%를 추가로 받는 ‘돈벼락’이 예상되지만 그가 속한 백색가전 부문은 실적이 좋지 않아 크게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 박 대리는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만 심하게 느낀다”고 말했다.
▽디커플링(decoupling)=‘분리’ ‘결별’을 뜻하는 영어단어다. 2004년의 큰 화두는 ‘디커플링’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같은 배를 탔던 사이에 틈이 벌어지는 것. 회사가 잘 나간다고 꼭 모든 직원들이 잘 나간다는 보장이 없다. 성과급 지급시 같은 회사에서도 사업부문별, 혹은 개인에 따라 명암이 엇갈린다.
개별 기업과 국가 경제가 분리되기도 한다. 한국 경제는 올해 극심한 침체에 시달렸다. 그러나 일부 우량 대기업들은 ‘나홀로 성장’을 계속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매출액이 43조원으로, 사상 최대였던 작년(40조5115억원)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자동차 역시 내수침체에도 불구하고 수출호조로 올해 9월까지 매출액이 17조714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7조7390억원)과 큰 차이가 없다.
‘대기업 성장→중소기업 파급→고용증가→소비증가→경제성장’의 선(善)순환 고리가 깨진 것. 디커플링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
자동차 산업은 전후방 효과가 어느 산업보다 크다. 현대자동차는 글로벌 전략 차원에서 미국 앨라배마주에 자동차 공장을 짓고 있다. 유럽에도 30만대 규모의 공장을 짓기 위해 부지를 물색 중이다. 그러나 국내 생산규모는 늘릴 계획이 없다.
자동차 공장이 나가면 부품업체도 따라간다. 이렇게 되면 ‘현대자동차 성장=고용창출 및 국가 경제 기여’라는 등식이 일정 부분 깨질 수밖에 없다.
▽급증하는 ‘이직’=직장인들은 더 이상 회사의 미래와 자신의 장래를 같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채용정보업체인 잡링크는 최근 직장생활을 3년 이상 한 직장인 1241명을 대상으로 이직여부를 조사했다. 88.5%가 “이직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인사조직 전문컨설팅업체인 타워스페린 박인호 상무는 이 같은 현상을 “개인들이 자신에게 맞는 ‘짝’(회사)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일부는 아예 창업을 통해 ‘독신’을 선언한다. 창업전략연구소가 주관하는 10주 코스의 창업학교는 수강료가 150만원에 이르지만 직장인들이 전체의 절반을 차지한다.
디커플링은 기업간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삼성전자는 휴대전화용 액정화면 공급을 더 이상 삼성전자 LCD사업부와 삼성SDI에만 맡기지 않는다. “경쟁이 없으면 품질개선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삼성전자의 설명.
현대자동차도 과거 금강기획이 독점했던 자동차 광고 대행을 이제는 경쟁적인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선정한다. ‘우리가 남이가’는 이제 옛말이다.
최근 세계 경제가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데도 한국 경제가 불황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현상을 디커플링으로 진단하는 시각도 있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수출과 내수 부문의 단절, 가계부채로 인한 내수위축 등으로 한국 경제와 세계 경제가 디커플링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역동적인 조화’를 향하여=삼성경제연구소 이언오(李彦五) 상무는 “외환위기 이후 공동체 의식이 옅어지고, 경쟁이 격화되고,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사회 전 분야에서 디커플링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상무는 “모든 경제 주체가 서로 다른 방향을 추구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더 바람직한 균형점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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