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천광암/‘원가 공개’의 비싼 대가

  • 입력 2004년 6월 22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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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강 물을 공짜로 떠다 판 조선시대 물장수에게도 원가랄까 비용은 들었다. 물지게 값이나 본인 인건비 따위다. 경제정책에도 비용이 든다. 예를 들어 경기를 띄우기 위해 돈을 풀면 부작용으로 물가가 오른다. 인플레이션이 경기부양의 비용인 셈이다.

경제정책은 대개 인기가 높을수록 원가가 비싸다. 또 잇속은 눈앞에서 챙기지만 비용은 나중에 두고두고 치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원가구조는 ‘포퓰리즘’이라는 독버섯을 키우는 토양이 되기도 한다. 가까운 예가 미국 일부 지역과 베트남 등에서 서민층의 열렬한 지지를 업고 시행된 주택임대료 상한제다.

임대료를 법으로 정해진 금액 이상 받지 못하게 하는 이 제도는 시행 초기, 서민들의 천국을 만들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비용이 본모습을 드러냈다. 집주인들은 집이 아무리 낡아도 수리하지 않았다. 빈 땅이 널려 있어도 임대주택을 짓는 사람이 없었다. 수지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주인과 ‘끈’도 없고 운(運)마저 없는 서민들은 밖으로, 밖으로 밀려났다.

베트남의 한 전직 장관은 그 기막힌 폐해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미군의 폭격은 하노이를 파괴하지 못했다. 그 일을 우리가 했다. 매우 싼 임대료로.”

분양원가 공개는 시장가격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임대료 상한제와 기본발상이 같다. 정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시장가격을 왜곡시킨 데 대한 대가는 똑같이 치르게 돼 있다. 임대료 상한제는 시장 대신 법을, 분양원가 공개는 시장 대신 ‘여론과 데모’(한덕수 국무조정실장)를 앞세운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를까.

임대료 상한제에서 집주인들이 셋집 공급을 줄였듯이 원가공개를 통해 분양가를 억지로 끌어내리면 건설업체들은 아파트 분양을 줄일 것이다. 아니면 집주인들이 수리비용을 아꼈듯이 일부 건설업체들은 값싼 자재를 써 이윤을 보상받으려 할 것이다. 여기에다 낮아진 분양가와 시세의 차이를 노린 투기가 판칠 것이다. 길게 보면 투기수요는 늘고, 공급은 줄며, 부실아파트가 많아지는 값비싼 비용이 기다리고 있다.

물론 열린우리당 지도부 생각대로 주공아파트만 분양원가를 공개하면 이런 부작용은 상당히 줄어든다. 하지만 그러다가 분양받기는 꿈도 꾸지 못하는 ‘진짜 서민’을 울리기 딱 좋다.

주공은 저소득층을 위한 국민임대주택사업의 실질적 주체다. 작년까지 지어진 국민임대주택 19만호 가운데 94%를 주공이 지었다. 정부가 2012년까지 짓기로 한 100만호도 대부분 주공이 맡아야 할 몫이다. 그런데 국민임대주택은 지방자치단체들마저 건설을 꺼릴 정도로 수지 맞추기가 어려운 장사다. 임대료가 시중가격보다 훨씬 낮게 정해지는 데다 임대기간인 30년 동안 자금이 꽁꽁 묶이기 때문이다. 분양사업마저 수익을 못 남기게 하면 국민임대주택사업이 타격을 입을 것은 뻔하다.

분양원가 공개처럼 비싼 대가를 치르는 방법이 아니라도 분양가를 낮출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분양가 담합과 부동산 투기를 뿌리 뽑고, 집은 지을 생각도 없으면서 택지를 매점해 분양원가를 끌어올리는 사이비주택업체들을 솎아내면 된다. 원가 공개에 집착하다가는 ‘시장의 실패’와 ‘정부의 실패’에 이어 ‘여론의 실패’라는 신조어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천광암 논설위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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