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졸라매는 서민]싼주유소 찾아 市 넘고, 채소 기르고…

  • 입력 2004년 8월 4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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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물가가 크게 올라 서민들의 부담이 커졌다. 장마 등으로 농축산물 가격이 뛴데다 기름값과 교통비까지 올라 ‘긴축’에 들어간 소비자들이 많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소비자물가가 크게 올라 서민들의 부담이 커졌다. 장마 등으로 농축산물 가격이 뛴데다 기름값과 교통비까지 올라 ‘긴축’에 들어간 소비자들이 많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에 사는 이승의(李昇儀·33) 김세영(金世映·33)씨 부부는 요즘 사람이 변했다.

비싼 채소를 먹지 않기로 한 데다 기름값이 싼 주유소를 찾아 시 경계를 넘나들기도 한다.

이씨는 코스닥에 등록된 인터넷기업에 다닌다. 그의 월급은 350만원 안팎. 또래 직장인 평균 임금보다 높다. 이씨 부부는 올해 6월까지만 해도 1주일에 한 번씩 외식을 하고 첨단 음향제품이 나오면 꼭 샀다.

‘잘나가던’ 이씨 부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주부 김세영씨 채소 구입가 (단위:원)
채소6월 30일7월 30일
배추(1포기)14003000
상추(300g)18005400
당근(1kg)19002200
고추(500g)45006000
부추(500g)12502050

원인은 물가. 통계청은 7월 소비자물가가 작년 같은 기간보다 4.4% 올랐다고 밝혔다. 이씨 부부가 허리띠를 바짝 졸라맨 것도 지난달부터다.

김씨는 최근 영수증을 정리하다 깜짝 놀랐다. 할인점에서 산 채소 가격이 한 달 만에 70% 남짓 뛰었기 때문.

7월 30일 집 근처 마트에서 구입한 배추, 상추, 당근, 빨간 고추, 부추 등 5가지 채소 가격은 총 1만8650원. 김씨는 한 달 전인 6월 30일 같은 채소를 1만850원에 샀다. 김씨는 채소 소비를 줄였다. 한 달 사이 값이 3배나 뛴 상추는 아예 끊었다. 대신 그는 텃밭에서 채소를 기르기로 했다. 집 뒤뜰에 2평짜리 밭을 일구는 것. 상추 등 최근 가격이 폭등한 채소를 주로 심었다.

김씨는 “힘들지만 가격이 안정될 때까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남편 이씨는 틈만 나면 주유소 탐방에 나선다. 7월 중순부터 집 근처 경유 가격이 L당 1000원을 넘어선 탓.

지난 주말 이씨는 뜻밖의 수확을 올렸다. 경기 부천시 원미구 중동대로변에서 경유를 910원에 파는 주유소를 발견한 것. “매주 본가가 있는 원미동에 들를 때마다 이 주유소에서 기름을 꽉 채우면 4000여을 절약할 수 있어요.”

주부들은 장을 볼 때 눈높이를 한 단계 낮췄다.

김현숙씨(42·서울 송파구 잠실동)는 “유기농 채소만 고집했는데 이젠 저농약 채소로 대체하거나 떨이판매 시간대를 이용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할인점별 유인물을 꼼꼼히 살피는가 하면 인터넷 가격 비교 사이트를 이용하는 주부도 많아졌다. 손정현씨(38·서울 양천구 목동)도 그중 한 명. “물가가 올랐다고 지출을 그만큼 늘릴 수는 없으니 가격 정보에 민감할 수밖에요.” 그는 “지역과 유통업태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라고 말했다.

농산물에 이어 공산품 수요도 위축됐다. 소비자들은 냉장고 캠코더 텔레비전 등 고가 가전제품 구입 시기를 연말 이후로 미루고 있다.

물가 급등으로 소비 심리가 더 얼어붙을 것이란 우려도 있다.

현대백화점 김인호 유통연구소장은 “기름값 상승분이 공산품 가격에 본격 반영되는 10월 이후 소비가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홍수용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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