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우파정권이 집권하더라도 사회 깊숙이 뿌리내린 좌파적 전통과 노조의 힘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독일과 프랑스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런 변화는 올 2월 독일 최대 단일 산업노조인 금속노조가 전체 근로자의 절반까지는 주당 근로시간을 40시간으로 연장하는 데 동의하면서 시작됐다.
이어 다국적기업 지멘스의 휴대전화 조립공장 노사가 지난달 24일 주당 40시간 근무제에 합의했다. 임금이 훨씬 싼 헝가리로 공장을 옮기면서 2000명을 감원하겠다는 회사 방침에 따라 노조가 양보한 것이다. 회사측은 그 대신 최소 2년간 생산설비를 유지하기로 했다.
프랑스에서는 독일 보슈사의 자동차부품 제조공장 노조가 19일 주당 36시간 근무에 동의했다. 2008년까지 정리해고 될 300명 중 200명을 구제하기 위해서였다. 프랑스 사회는 정부 각료들이 주 35시간 근무제를 다시 논의하자고 촉구하고 있다.
이런 추세는 강한 노조운동에 따른 비용 상승이 공장 폐쇄 또는 해외 이전을 부추겨 결국 실업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역사적 경험에 따른 것이다.
물론 서유럽과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독일이나 프랑스보다 월등히 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심 사항을 양보하는 그들 노조가 시사하는 점은 적지 않다.
현재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시급한 사안은 공기업이나 대기업 근로자의 문제가 아니다. 더 적은 임금으로 더 많은 시간을 일하는 하청기업 근로자들의 문제가 우선이고, 전체 실업의 절반을 넘어선 청년실업은 화급을 다투는 문제다. 사회 한 구석에서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으로 고생하는 근로자들의 문제도 아직 남아 있다. 중산층의 기반을 어느 정도 확보한 공기업이나 대기업 근로자는 우선순위가 떨어진다.
상대적으로 훨씬 많은 임금을 받는 대기업 노조가 파업을 하면 하청기업 근로자들은 일거리가 없어져 임금이 더 줄어드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부자 노동자가 가난한 노동자를 착취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실정이다. 자신들의 일자리와 높은 임금이 다른 사람들의 실업 및 저임금의 대가라는 사실에 눈감아서는 안 된다.
70, 80년대 노동운동이 국민들로부터 적지 않은 심정적 동조를 받았던 이유는 오랜 군사독재로 고착된 사회 각 부문의 비민주성을 떨어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노동운동은 압축성장의 과정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의 민주화 염원을 담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노동운동은 민주화 운동이 아니다. 오늘날 자신의 일자리 하나를 지키기 위해 청년 한 명이 실업 상태로 머무르게 하는 노동운동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면 엄청난 착각이다.
노동운동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사회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면 도덕성을 상실한 것이다. 사회 전체의 이익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주장은 이기주의의 표출일 뿐이다. 한국의 노동운동이 서유럽 노조에서 변화의 단초를 구할 수는 없을까.
김상영 국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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