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째 이삿짐센터를 운영 중인 유인혁(柳寅赫·50·서울 은평구 대조동)씨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25일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6시간째 사무실을 지켰지만 제대로 된 문의전화 한 통 없다.
속이 타는 만큼 담배만 더 빨아댔다. 통상 10∼40여일 전에 이뤄지는 이삿짐 예약 특성상 8월 막바지인 지금은 9월 예약이 들어와야 한다. 조바심이 났다. 버릇처럼 벽에 걸린 달력을 넘겨보지만 9월 달력엔 ‘예약 동그라미’ 하나 없이 텅 비어 있다.
10개월째다. 사무실 운영비도 못 건지고 한달 평균 100여만원씩 밑져 1000여만원을 까먹었다. 부동산 10·29 대책이 있은 작년 10월 이후 이사철 비수기까지 겹치면서 월별 이삿짐 처리 건수가 손익분기점의 절반 수준으로 추락했다.
올해 1월 11건이었던 실적은 성수기인 3월에 23건으로 잠깐 늘었다가 7월에는 12건으로까지 곤두박질쳤다. 8월에는 다소 늘어 20건이지만 한 달 평균 40건은 처리해야 수지를 맞추는 점을 감안하면 어림도 없다.
포장이사 건당 35만∼40만원을 받아봐야 인부 4인 인건비(1인당 7만∼8만원선) 주고 나면 남는 게 없다. 10만원이 안 되는 돈을 모아 사무실 임대료와 차 보험료, 전기세, 세금 등을 충당해야 한다.
자기 소유인 5t과 2.5t 트럭, 빌려서 쓰는 1t 트럭 4대로 영업하는 유씨는 그나마 ‘일처리를 꼼꼼히 한다’는 평판 덕분에 사정이 나은 편. 직원들 다 내보내고 트럭 1대로 부인과 남편이 운영하는 곳도 많다.
유씨도 한때 4명까지 뒀던 직원을 다 내보냈다. 남아 있는 3명은 고정 월급 받는 사람이 아니라 단골로 쓰는 일용 잡부들이다.
“1t 트럭을 가진 차주도 일용 잡부로 일해. 일거리가 없거든. 또 일당이라도 벌려고 나처럼 사장이 직접 이삿짐 싸러 다니는 곳이 대부분이야.”
경기가 나쁠 때는 이삿짐 옮기는 일이 더 힘들다. 사업에 실패해서 작은 평수로 옮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 짐 정리가 힘들어 밤늦게 일이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집주인의 딱한 사정 때문에 힘든 내색조차 못한다.
이젠 버티기도 힘겹다. 유씨는 16년이나 모시던 여든이 된 노모(老母)를 올 봄에 눈물을 머금고 경기 이천시의 여동생 집으로 모셨다. 딸이 벌어오는 100여만원의 월급으로는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
2년 전 생애 처음으로 구입했던 32평형 아파트는 아직 구경도 못했다. 잔금을 마련하지 못해 전세를 들이고 자신은 여전히 20평형 다가구주택에서 전세로 살고 있다.
‘노모를 다시 모시는 것이 소망’이라는 그는 텅 빈 9월 달력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라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원.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때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악’ 소리도 못 내고 서서히 말라 죽는 느낌이야.”
허진석기자 jameshuh@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