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로6가 동대문종합시장 C동2층. 남성복 매장의 정두성(鄭斗成·47)씨는 지나가는 손님마다 말을 붙여 보지만 고개를 돌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정씨는 1990년부터 이곳에서 14년간 맞춤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2000년까지 하루 10벌 이상 팔리던 양복이 지난해에는 4, 5벌로 줄더니 올해 들어서는 기껏해야 1, 2벌이 고작이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98년에도 지금보다는 사정이 훨씬 나았다. 한 달에 400만원 이상 벌 때도 많았다.
“2000년 후반부터 손님이 줄더니 2002년 월드컵이 끝난 뒤부터는 더 나빠졌어요.” 동대문시장 상인 대부분은 2002년 월드컵을 ‘본격적 불황의 출발점’으로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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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가 파는 양복은 원단을 손님이 가져왔을 때 상하의 1벌에 12만원, 원단을 이곳에서 구입하면 18만∼20만원이다. 공장 운영비와 인건비를 빼면 양복 1벌에 4만원 정도 남는다. 최소한 5, 6벌은 팔아야 매달 점포임대료(100만원), 가게 관리비(30만원)를 빼고 생활비를 벌 수 있다.
지난해 임대료 등으로 2000만원 적자를 냈던 정씨는 올 상반기에만 두 달이나 임대료가 밀렸다. 부담을 줄이기 위해 2개월 전에 2칸(약 2평)짜리 가게를 1칸으로 줄였지만 하루 1, 2벌 팔아서는 여전히 임대료도 내기 어렵다.
하루 종일 내려져 있는 이웃 가게의 셔터를 볼 때마다 “이제 장사를 접어야하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이 시장 같은 층의 10여개 맞춤복 가게 가운데 2곳이 최근 문을 닫았다.
파리만 날리던 가게에 반가운 얼굴이 찾아왔다. 작은 무역업체를 운영하는 고동욱 사장(47)은 10년이 넘은 이 가게의 단골이다. 예전에는 계절별로 꼭 1, 2벌씩 양복을 해 입었지만 지난 2년간 보지 못했다.
고 사장은 “지나던 길에 들렀다”며 어려운 사정을 얘기했다. 몇몇 대형업체를 제외하면 무역업도 대단히 힘들어 전에 맞춰간 옷만 입고 지낸다는 말도 했다. 그는 조금 뒤 “옷을 맞추지 못해 미안하다”며 멋쩍은 표정으로 돌아갔다.
오후 6시반. 상가가 문을 닫는 시간이다. 셔터를 내리는 정씨의 어깨에는 기운이 없었다. 요즘은 주변 상인들끼리 맥주 집에 들러 한 잔하는 일도 없어졌다.
고교 졸업 후 상경해 처음 배운 일이 맞춤 양복이었다. 열심히 기술을 배워 90년 가게를 열었다. “내년에야 중학교에 들어가는 아들과 초등학교 3학년 딸을 생각하면 한숨만 나옵니다.”
정재윤기자 jaeyuna@donga.com
◇다음에는 물가 상승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주부의 이야기가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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