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오후 7시. 경기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보충수업학원인 ‘교모’의 강의실 5개 가운데 수업이 진행 중인 곳은 단 한군데였다.
학원 원장인 오승환씨(38)가 수업 후 학생들을 차로 데려다 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4대였던 승합차를 1대로 줄이고 운전사를 내보낸 뒤 오 원장이 하루 세 차례씩 직접 운전사 노릇을 한다.
강사는 오 원장을 포함해 3명. 최근 2년간 강사와 직원을 합쳐 9명이 나갔고 학생 수는 300명에서 100명 밑으로 줄어들었다. 다음달 신규 수강신청자는 아직 한 명도 없다.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수학과 글쓰기를 가르치는 교모는 2002년 초까지만 해도 분당에서 ‘잘 나가던’ 학원이었다. 그러나 경기 불황이 이어지면서 학생들이 점차 빠져나갔다. 경기나 나빠지자 ‘창의성과 논리력을 기르는’ 데까지 학부모들이 신경 쓸 여유가 없어진 탓이다. 학원가의 과열 경쟁, 교육방송 활성화 등 사교육비 경감 정책도 영향을 미쳤다.
오 원장은 “부자들이 많은 동네이지만 대학 입시와 큰 상관이 없어선지 찾아오는 발길이 예전 같지 않다”며 “학원비를 제때 안 내는 학생들이 있어도 학원을 끊을까 봐 재촉을 못 하겠다”고 말했다.
오 원장은 매월 임대료 500만원에 관리비 200만원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임대료가 절반 이하인 다른 건물로 옮긴 상태. 빈 강의실은 개인 과외교사와 학생 1명에게 빌려주고 소액의 사용료를 받고 있다.
오 원장은 “현재 본전치기는 하고 있지만 학원 이전 등으로 지게 된 1억원의 빚은 이자도 낼 여력이 없다”고 털어놨다. 집에 가져가는 돈은 한 달에 35만원 안팎. 그는 “시골에 계신 부모님 명의로 대출받은 돈을 갚지 못하는 죄스러움 때문에 이달 어머니 생신에 전화도 못 드렸다”며 한숨을 쉬었다.
대책을 묻자 “현재로서는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오 원장은 “스타 강사라도 있으면 학생들이 따라서 몰려올 텐데 그런 강사를 잡아둘 능력이 없다”며 “언젠가는 잘 될 것이라는 교육적인 신념을 갖고 계속 학원을 운영할 뿐”이라고 했다.
그는 “그래도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아직 상황이 괜찮은 편”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지인(知人)인 명일동의 한 학원장은 최근 학원을 폐업했고 양천구의 또 다른 원장도 학생이 너무 줄어 폐업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것.
실제 한국학원총연합회나 학원업계에 따르면 학생 수 감소에 따른 수익 악화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학원이 늘어나는 추세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일부 대형 학원마저도 수입이 20% 감소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오 원장은 “맞벌이를 하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지만 10년간 쏟은 세월이 아까워서라도 여기서 포기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다음은 내수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동차 영업사원의 이야기가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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