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가까운 쌀협상 과정에서 한국은 농업계의 요청을 받아들여 관세화 유예 연장을 관철했다. 관세를 통해 쌀시장을 보호하기보다는 합의된 일정 물량만을 수입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이처럼 쌀협상은 당초의 목적을 달성했으나 국회의 국정조사에서는 ‘이면합의’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여기에다 국내 농업계의 반발 등 몇 가지 쟁점 이슈가 제기되어 쌀협상 이행에 대한 국내의 정치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비준안도 아직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첫째, 농가 회생을 위한 근본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비준안 통과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선대책 후개방’의 주장이다. 농민단체들은 근본대책으로 농정 전반에 대한 건의사항을 제기했다. 정부는 농민들의 요구를 반영한 추가보완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특히 쌀고정직불금의 인상, 공공비축제 물량확대, 식량자급률 목표치 수립, 민간유통기능 활성화 등 각종 보완대책이 결실을 보게 되면 쌀개방에 따른 농업 피해가 상당히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둘째, 지난해 말까지 타결하기로 했던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의 시한이 올해 말로 연장된 만큼 우리나라의 쌀협상 시한도 연장된 것이므로 재협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DDA협상의 법적 시한은 정해진 바 없으며, 세계무역기구(WTO) 농업협정문을 보면 우리나라의 쌀협상 시한은 2004년 말로 명시되었기 때문에 DDA협상 시한과 쌀협상 시한은 별개인 것이다.
셋째, 일부 농업단체는 한국이 협상결과를 이행하지 않아 협상대상국이 WTO에 제소하더라도 우리에게 꼭 불리한 결과가 나온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WTO의 최종 판정결과가 나오는 데는 2, 3년이 걸리므로 시간을 벌 수 있고, 이 기간에 DDA협상이 타결될 경우 그 시점에서 관세화전환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선택을 할 경우 일어날 수 있는 국가신인도의 손상과 국제분쟁에 대해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는 품격 있는 나라, 교역을 성장의 동력으로 삼고 있는 나라가 선택할 만한 대안은 아니다.
이처럼 쌀협상의 국내 절차를 미루자는 주장의 근거는 매우 취약하다. 또 향후 수입쌀 구매절차를 감안해 볼 때 구매기준 마련, 입찰공고, 계약 등에 최소한 3개월 이상이 소요되므로 늦어도 9월 중에 국회비준안이 처리되어야 의무이행이 가능하게 된다. 국회비준이 계속 지연될 경우에는 이행계획서상 금년에 이행해야 할 의무사항을 실시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국내적으로는 수입쌀 관리에 차질을 빚을 수 있으며, 관세화유예 이행계획을 예정대로 실시하지 않은 데 대해 협상대상국들과의 대외통상마찰이 발생할 수 있다. 또 올해 이행해야 하는 의무사항이 내년에 한꺼번에 몰리기 때문에 농업계의 피해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우리가 확보한 10년의 관세화 유예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를 맞게 될 수도 있다.
세계적인 개방 추세가 심화됨에 따라 쌀시장의 개방폭은 앞으로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다. 우리로서는 이제 소모적 논쟁에 머물지 말고 기술농업을 통해 고품질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고품질 쌀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는 농민, 국산 쌀을 믿고 사는 소비자, 신뢰할 수 있는 정책을 세우는 정부가 서로 협력하는 것만이 우리 쌀을 지킬 수 있는 길이다.
최낙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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