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의 비자금 용처 수사는 관계와 금융계, 정계 고위 인사에게 사업 청탁과 함께 건네졌을 가능성이 있는 로비 자금과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불법 정치자금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또 노조 파업을 무마하고 임금협상을 회사에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제공된 500억 원 이상의 노조 관리비도 주요 수사 대상으로 부각되고 있다.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은 이날 "28일 밤 구속한 정 회장을 오늘 처음으로 소환해 정·관계를 상대로 한 로비 의혹은 물론 비자금의 용처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검찰은 16대 대선을 앞둔 2002년 하반기에 글로비스 비밀금고에 보관돼 있던 비자금 246억원이 출금된 점에 비춰 이 돈이 정치권에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 회장을 추궁하고 있다.
검찰은 정 회장이 현대모비스와 기아차, 위아 등에서 조성된 비자금 682억여원의 일부를 불법 정치자금으로 정치인들에게 제공한 정황을 포착하고 이 부분도 캐묻고 있다.
검찰은 비자금 용처 수사와 별도로 4000억원에 이르는 정 회장의 배임 혐의에 대한 보강 수사를 벌인 뒤 정의선 기아차 사장과 현대차그룹 임직원들의 사법처리 범위와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검찰은 또 정 회장이 비자금 대부분을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노무관리비와 현장격려금 등으로 썼다고 주장하는 만큼 용처 수사를 통해 이 말의 진위 여부도 가릴 계획이다.
이와 별도로 부실기업 인수와 금융기관 대출 알선과 관련해 금융브로커 김재록 씨의 로비 내용도 계속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정의선 사장도 필요할 경우 재소환해 비자금 조성과 경영권 편법승계 등 비리에 연루됐는지 여부를 조사하기로 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부채탕감과 관련해 박상배 전 산은 부총재와 이성근 산은캐피탈 사장이 비자금을 받은 혐의에 대한 보강 조사도 계속할 계획이다.
한편 이날 소환 조사를 받은 정 회장은 이날 오전 9시30분경 다른 미결수 등과 함께 서울구치소의 호송 버스편으로 대검찰청 청사에 도착해 중앙수사부 조사실로 직행했다.
피의자 신분으로 구속 상태인 정 회장은 행형법에 따라 구치소에서 대검청사까지 포승에 묶인 채 이동했으며 이후 조사실에서는 포승을 풀고 조사를 받았다.
정 회장은 그러나 다른 미결수들과 달리 수의가 아닌 정장 차림으로 검찰에 출석했다고 검찰 관계자는 전했다.
형이 확정되지 않은 채 구치소에 수용된 미결수들은 수의를 입고 검찰에 나와 조사를 받는 게 일반적이나 정 회장은 이날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나온 것.
서울구치소 관계자는 "1999년 3월 제정된 법무부 훈령 407호에 따라 수용자는 재판에 출석하거나 검찰 조사에 임할 때 사복을 입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 회장은 수감 이튿날인 29일 면회 온 아들 정 사장에게 옷가지와 영치금을 부탁했는데 이때 검찰 출석 때 입을 셔츠 등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조사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변호인을 접견할 수 있어서 조사 중간 10층에 대기하고 있던 변호인이 11층 조사실로 올라와 정 회장과 접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성하운기자 haw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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