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첫날인 8일 양국은 ‘동의명령제’를 도입하기로 하는 등 경쟁 분과에서 모든 쟁점을 타결하는 성과를 냈다. 19개 분과 중 완전 합의에 이른 것은 경쟁 분과가 처음이다.
통관 분과도 1, 2가지 쟁점을 빼고는 대부분 합의를 봤다.
그러나 자동차, 쇠고기, 개성공단 문제 등에서는 의견 차이가 여전히 커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이번 8차협상은 12일까지 계속된다.
○ 속도 붙는 분과별 협상
양국 협상단은 사실상 마지막 대규모 협상인 이번 8차협상에서 핵심 쟁점을 제외한 대부분을 타결짓는다는 자세로 ‘가지치기’에 속도를 냈다.
첫날 양국은 경쟁 분과에서 동의명령제 도입에 합의했다.
동의명령제란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기업이 공정거래위원회와 위반행위를 시정할 것을 합의하면 제재 없이 사건을 끝내는 제도다.
공정위가 위반행위를 조사하는 동안 발생할 피해를 줄일 수 있고, 기업으로서도 제재 조치에 따른 이미지 손상, 법정 분쟁에 따른 부담을 덜 수 있어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에서는 이미 시행하고 있다.
한국의 공정위도 2월 임시국회에 제출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동의명령제를 도입하는 내용을 포함시키려 했으나 법무부의 반대로 최종 개정안에 담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합의로 국내에서도 동의명령제 도입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또 미국이 요구했던 ‘재벌도 경쟁법(공정거래법)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각주(脚註)는 삭제하기로 했다.
통관 분과에서도 양국은 교역 시 통관절차를 신속하게 하기 위한 협의체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이 밖에 우회수출을 막기 위해 수입업자에게 상품의 원산지를 직접 검증할 수 있는 권한을 주기로 했다.
금융 서비스 분과에서는 원화자산의 국경 간 거래는 2년 뒤 다시 협의하기로 했고 보험사가 상대국에서 직접 보험을 판매하는 대면 방식은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
김종훈 한국 측 협상단 수석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양국이 절충 노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고 말했다.
○ 미국, “자동차 쇠고기 시장 열어라”
한국이 공산품 분야 개방안에서 가장 관심을 갖는 분야는 자동차 시장 개방안.
그러나 미국은 아직 자국의 개방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한국 시장 개방 압력을 강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웬디 커틀러 미국 측 수석대표는 이날 회견에서 “8차협상에서 한국의 자동차 분야 개방에 우선순위를 둘 것”이라며 “미 의회 의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미 의원들은 최근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한국의 자동차 관세는 즉시 없애고 미국의 자동차 관세는 15년 동안 유예하자’는 서한을 보냈다.
이에 따라 9일 열릴 자동차 분과 회의에서 미국 협상단은 한국에 자동차 시장 개방을 강하게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측 협상단 관계자는 “미 의원들의 무리한 요구가 협상에 그대로 반영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면서도 “미국이 이를 지렛대로 활용해 시장 개방 시기를 최대한 늦출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예측대로라면 미국의 자동차 관세 폐지 시기는 한국의 요구대로 ‘즉시’가 아니라 3년 또는 5년 내 정도로 늦춰질 가능성이 높다.
커틀러 대표는 또 회견에서 “쇠고기 시장의 완전한 재개방 없이 FTA는 있을 수 없다”며 한국 쇠고기 시장의 완전한 재개방을 촉구했다.
이는 지난달 미 워싱턴에서 열린 7차 협상에서 “쇠고기 수입 문제는 FTA 논의 사항이 아니다”며 언급을 자제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미국은 개성공단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하는 데 대해서도 여전히 불가능하다는 시각을 고수하고 있다.
○ “봄이 오면 협상이 결실을 볼 것”
양국 협상단의 대치에도 불구하고 협상 타결에 대한 긍정적인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커틀러 대표는 “봄이 오면 협상이 결실을 볼 것”이라며 “8차협상은 가장 강도 높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대표도 “최근 봄기운이 돌다 갑자기 추워졌지만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고 해서 다시 겨울로 돌아가는 게 아니다”고 화답했다.
이는 미 의회가 행정부에 부여한 무역촉진권한(TPA)의 만료 시점을 감안할 때 실질적인 협상 만료 시점인 4월 2일 전후 ‘최후의 순간’에 타결될 것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핵심 쟁점들도 적지 않아 최종적으로 어떤 결론이 날지는 아직 예측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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