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경제학, 행정학 등 여러 사회과학 서적을 많이 보고 있다. 전문지식을 쌓아 더 나은 공직자가 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늘 궁금했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려운 상태에서 출발한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방법, 즉 “어떻게 하면 개도국이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
미 하버드대 역사학과 교수 니얼 퍼거슨의 ‘시빌라이제이션’은 이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15세기 당시 가난하고 분열된 서양이 어떻게 동양을 추월하여 500년 동안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설득력 있는 의견을 제시한다. 그것은 제도와 규범, 행위가 복합된 여섯 가지 요인으로 압축된다.
자본주의의 발판을 만든 경쟁 장려체제, 자연을 연구하며 변화시켜 군사적 강점을 만든 과학혁명, 개인의 소유권을 보호하고 분쟁을 평화롭게 해결하는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져온 재산권 개념, 건강을 증진하여 수명을 연장시킨 의학, 산업혁명을 뒷받침한 물질적 삶의 소비문화, 그리고 체제 변화로 인한 사회불안을 안정시키는 프로테스탄트 직업윤리가 바로 서양의 성공요인이라는 것이다. 서양은 이 여섯 가지 무기를 바탕으로 세계의 나머지 지역을 정복했고 지금도 선진국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한국 역시 서양이 만든 이러한 시스템을 활용하고, 우리의 장점을 추가해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후진국이었던 한국이 급속한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이제 선진국의 문 앞에 와 있다. 하지만 우리가 명실상부하게 세계가 인정하는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이 책이 시사하는 서구 선진국이 최근에 보이고 있는 문제점을 미리 해소해야 한다.
저자는 서양문명이 위기를 맞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소비사회의 경박함, 물질주의의 병폐, 서양 역사를 지탱해 온 신앙심과 윤리의 실종 등 ‘내부로부터의 문제’에 있다고 진단한다. 선진국의 문턱에 서 있는 한국 역시 양적 성장만을 앞세웠던 맹목적인 서구화라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앞에 직면한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저자는 올바른 역사인식을 통한 자신감 회복과 강한 신념과 확고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한 질적 성장 추구가 그 답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결국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힘은 훌륭한 제도와 더불어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발전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뻔한 결론인 것 같지만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흥미진진한 역사 이야기 덕에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 600년 서양사를 쉽게 정리하는 동시에 오늘의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서양문명의 실체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한 번쯤 읽어보길 권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