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핫 이슈]“수익률 모르지만… 이 상품이 좋다” 황당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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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29일 03시 00분


■ 본보, 지점 20곳 다녀보니
70%가 계열사 펀드만 추천… 지점 절반 ‘성향 분석’ 안해
고객은 뒷전, 내몫 챙기기… 금융위, 영업정지 등 검토

“요즘 이 펀드가 괜찮아요. 손실 위험이 낮아서 고객님들이 많이 찾으세요.”

21일 서울 마포구의 A증권사 지점. 펀드를 알아보러 왔다는 말에 상담 직원이 펀드 목록이 적힌 책자를 꺼냈다. 책자엔 수많은 회사의 펀드가 나열돼 있었다.

형광펜을 든 직원은 한 펀드에 밑줄을 그었다. 이 증권사의 계열 자산운용사가 만든 펀드였다. “저도 이 펀드 가입했어요. 워낙 좋은 펀드라서 자신 있게 추천해 드리는 겁니다.”

다른 상품을 물어보자 직원은 펀드 두 개를 추가로 추천했다. 역시 계열사 펀드였다.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직원은 15분간 추천 펀드의 장점을 강조했다. “주가가 지금보다 60% 이상 빠지지 않으면 돈 버시는 펀드예요….”

해당 펀드의 최근 수익률을 묻자 직원이 “미래가 중요하지 과거 수익률은 무의미하다”고 했다. 확인해 보니 추천 펀드들의 최근 수익률은 좋지 않았다.

○ ‘계열사 펀드 밀어주기’ 여전

금융위원회가 이르면 4월부터 계열사 펀드 판매 비중을 50% 이하로 제한키로 하면서 막바지 ‘펀드 밀어주기’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밀어줄 수 있을 때 제 식구를 밀어주겠다는 것이다.

동아일보가 21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소재 13개 증권사와 7개 은행 등 20곳의 지점을 찾아 펀드를 추천받은 결과 계열사 펀드를 가장 먼저 또는 그 다음으로 추천한 지점이 14곳(70%)으로 나타났다.

가장 먼저 계열사 펀드를 소개한 지점은 10곳. 이 중 5곳은 두 번째도 계열사 펀드를 권했다. 계열사 펀드를 소개하면서 타사의 펀드와 수익률 등을 비교해준 지점은 11곳에 그쳤다.

계열사 펀드 팔기에 급급해 펀드의 특징과 수익률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곳도 많았다. 20곳 중 10곳은 금융투자상품에 가입할 때 거쳐야 할 ‘투자자 성향 분석’도 실시하지 않았다.

추천 펀드의 수익률이 좋았던 특정 기간만을 골라 설명하는 곳도 많았다. 펀드 설정 이후 3년 동안 수익률이 마이너스인데도 수익률이 좋았던 첫 6개월의 성과만 홍보하는 식이다.

여의도의 한 증권사 지점은 추천 펀드의 수익률을 묻자 “컴퓨터가 고장 나 수익률을 확인할 수 없다”는 황당한 대답을 내놓기도 했다.

○ 금융 당국 3월까지 대책 마련

계열사 상품 밀어주기는 특정 지점만의 문제가 아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계열사 펀드를 취급하는 46개 회사 가운데 계열사 펀드의 판매 비중이 50%를 넘는 곳은 14곳에 달했다. 판매 비중이 60% 이상인 회사도 10곳이었다.

전문가들은 계열사 펀드 판매에 집중하는 것은 투자자가 아닌 판매사와 계열사의 이익만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고객보다 계열사 이익을 앞세워서는 투자문화가 성숙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연태훈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원은 “계열사 상품을 얼마나 많이 팔았느냐에 따라 직원이나 지점을 평가하다 보니 밀어주기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며 “판매사와 계열사의 성과는 좋아지겠지만 펀드 수익률이 나쁠 때 손실은 고스란히 투자자의 몫”이라고 말했다.

금융 당국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4월 이후 계열사 펀드의 판매 비중이 50%를 넘으면 영업을 정지시키는 등 다양한 제재 수단을 검토 중이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김명종 인턴기자 고려대 법학과 4년
#수익률#계열사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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