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삼성전자, 현대제철, LG화학 등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의 사업장에서 안전사고가 잇따라 발생한 이후 안전관리 부문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안전사고를 일으킨 기업에 대한 처벌조항이 강화된 측면도 있지만 ‘안전은 경쟁력’이라는 인식이 서서히 확산된 결과로 분석된다.
○ 안전관리 투자 해마다 40%대 증가
14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 따르면 지난해 석유, 화학, 전자, 반도체 등 국내 40개 대기업이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노후·취약시설을 개선하는 데 투자한 금액은 1조811억 원(추정). 2012년 투자액 7589억 원보다 42.5%가 늘어난 것이다. 이들 기업은 올해도 같은 분야에 지난해 대비 43.0% 늘어난 1조5464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경총은 지난해 12월 해당 기업들을 대상으로 투자 현황 및 계획을 조사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8월 화재예방 설비, 노후 설비 교체, 안전 교육 등 안전·환경 강화에 올해 말까지 총 3조 원을 투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화학물질 관련 시설 개선에 3590억 원을 투자한 데 이어 올해는 7550억 원을 쓸 예정이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안전 분야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다. 잇단 사고가 발생한 현대제철 당진제철소가 지난해 12월 고용노동부로부터 ‘중대 재해 관련 안전관리 위기사업장’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2월 당진제철소를 직접 찾아 “안전은 소중한 생명의 문제이고 기업 경영의 최우선 가치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현대제철의 안전 분야 투자액을 5000억 원까지 늘릴 것을 지시했다.
LG화학은 올해 안전·환경 분야에 총 14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박진수 LG화학 부회장은 “경영환경이 어렵다 보면 편법에 대한 유혹이 많아지는데 이는 엄청난 손실로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며 임직원들의 안전의식을 독려하고 있다. ○ 안전관리 조직도 크게 강화
국내 기업들은 안전관리 전문 인력도 크게 늘리고 있다. 경총이 집계한 결과 국내 46개 화학물질 취급 기업들은 2012년 1126명이었던 안전관리 전문 인력을 지난해 1763명으로 56.6%나 늘렸다.
기아자동차는 3월 안전선포식을 갖고 회사 전체의 안전·환경을 총괄하는 안전환경기획실, 안전보건기획팀, 환경방재기획팀 등의 조직을 신설했다. 13일 안전관리 부문에 총 3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현대중공업은 지난달부터 3개조(2인 1조)의 사고위험특별진단팀을 상시 운영하고 있다. 안전관리자 권한을 강화해 현장에서 안전수칙을 위반한 사실을 발견하면 즉각 작업을 중지시킬 수 있도록 했다. SK하이닉스도 올해 초 조직 개편을 통해 기존 환경안전그룹을 환경안전본부로 격상시켰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환경안전 조직의 위상을 높이고 기능을 확대함으로써 각 사업장의 안전 및 환경 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 처벌 강화하자 투자 나선 기업들
각 기업이 안전·환경 분야를 크게 강화하고 나선 것은 안전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은 화학물질 관련 안전사고가 나면 해당 사업장 내 특정 생산라인 또는 공장 연매출액의 최대 5%까지 과징금을 물도록 하는 게 골자다. 국회에 계류 중인 환경오염피해구제법 역시 안전사고로 환경오염이 일어나면 기업이 피해에 대한 배상 책임을 지도록 한 법안이다.
기업들이 뒤늦게나마 안전에 투자하기 시작한 것을 반기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법과 규제에 등을 떠밀려 늘린 투자계획이다 보니 일회성에 그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근오 한국안전학회 회장(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은 “국내 기업들은 아직도 안전에 대한 투자를 비용으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 규제가 있어야만 집행한다”며 “기업 스스로가 안전에 대한 투자가 결국 기업 가치를 높인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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