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제주공항은 조용했다. 삼삼오오 렌터카를 빌려 공항을 떠나는 국내 관광객이 몇몇 보일 뿐 대형 관광버스 행렬은 자취를 감췄다.
평소 한국말보다 중국말이 더 많이 들린다는 대표적 관광지인 서귀포 중문 지역도 비슷했다. 메르스 확진환자가 거쳐 간 제주신라호텔은 불이 꺼져 있었다. 인근 제주롯데호텔 역시 불 켜진 방이 손에 꼽혔다. 중문관광단지에서 흑돼지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A 씨는 “평소 저녁 같으면 대기 시간이 2시간을 넘어가는데 메르스 사태 이후론 대기 시간 자체가 없어졌다”고 했다. 국내 최고 관광명소 제주의 6월은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급격히 냉각된 제주 관광 및 요식 산업을 살리기 위해 묘안을 짜냈다. 다음 달 22∼25일 제주신라호텔에서 열릴 ‘대한상의 제주포럼’에 참석하는 기업인들에게 최대한 가족과 동행할 것을 권장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 대한상의는 ‘상의 가족과 함께하는 김제동 토크콘서트’, 국내 정상급 성악가들을 초청한 ‘오페라 갈라 콘서트’ 등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대폭 강화했다.
○ 내수 진작 선봉에 선 경제단체들
대한상의 제주포럼이 열리는 기간 전국경제인연합회도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최고경영자(CEO) 하계포럼’을 예정대로 개최하기로 했다. 메르스 감염자 확산으로 인해 국내 여행객들의 발길이 뜸해지는 가운데 덩치가 큰 경제단체 행사마저 취소될 경우 지역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경련 역시 참석자들에게 가족 단위 동행을 유도해 지역 관광 산업에 일정 부분 기여한다는 계획이다.
재계가 내수 진작을 위해 ‘솔선수범’에 나선 것은 메르스 공포로 인한 경기 추락이 생각보다 훨씬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22일 서울 중구 을지로 롯데호텔에서 열렸던 대한상의 회장단의 긴급 회동도 이런 위기감 때문에 마련된 것이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두산그룹 회장)은 이 회의가 끝난 뒤 회사 인트라넷에 “우리 두산 가족은 근거 없는 걱정을 하는 대신 정확한 정보에 근거해 몸도 마음도 일상으로 돌아오길 바란다”며 “메르스 사태를 조기에 종식할 수 있는 최고의 백신은 성숙한 시민의식”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가 대한상의 긴급 회동에서 “메르스 확산보다 무서운 것은 근거 없는 공포감”이라고 강조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중소기업계도 내수 진작과 소비 회생을 위해 총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중소기업중앙회, 소상공인연합회, 벤처기업협회 등 15개 관련 단체는 최근 ‘범(汎)중소기업계 내수 살리기 추진단’을 출범시켰다. 중기중앙회는 24일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온누리상품권 구입 △중소기업 리더스포럼 정상 개최 △하반기 기념품 및 선물용품 구입 등을 위해 약 14억5000만 원을 조기 집행한다고 밝혔다. 박성택 중기중앙회장은 “작은 실천이 경제계 전체로 확산된다면 내수 살리기에 큰 동력이 될 수 있다”며 “정부 지자체 공공기관 기업 그리고 전 국민의 내수 살리기 동참을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 기업들도 발 벗고 나서
기업들은 직원들의 여름휴가 장려를 통해 내수 회복에 동참한다는 생각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최근 필요할 때마다 하루씩만 쓰던 연월차 휴가를 여러 개 붙여 쓰도록 권장하고 있다. 일명 ‘리프레시 휴가’다. 과거 여름휴가 때만 여행을 계획할 수 있었던 직원들은 2박 3일 또는 3박 4일씩 국내 여행을 다녀오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GS칼텍스도 23일 “여름을 맞아 리프레시 휴가를 많이 쓰라”는 내용의 e메일을 전 직원에게 보냈다. 매년 비슷한 내용의 메일을 보내고 있지만 메르스로 인한 경기 위축이 심각한 상황에서 회사 차원에서 휴가를 더 독려하고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GS칼텍스와 두산그룹 등 일부 기업들은 여름휴가를 2주일씩 보내는 ‘집중휴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대형마트들은 지역 농가를 지원함으로써 경기 침체를 극복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이마트의 ‘국산의 힘’ 프로젝트는 품질 좋은 국산 농축수산물을 발굴한 뒤 품질 강화, 판로 확대, 마케팅 등 유통 전 과정을 지원하고 있다. 3월 초 세발나물, 오골계 등 8개 농수산물을 대상으로 첫선을 보인 이 프로젝트는 무지개 방울토마토, 제주 한우, 유기농 참외 등 11개 품목으로 확대됐다. 롯데마트는 기존 로컬푸드(지역 농수산물을 그 지역 점포에서 판매하는 것) 운영 방식을 진화시킴으로써 농민 및 어민들의 수익을 증대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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