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조 반도체 투자, 6만명 고용효과… 도약 날개단 이천 경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14일 03시 00분


[2015 리스타트 다시 뛰는 기업들]<3>SK하이닉스 반도체공장의 힘
이천 경제 ‘SK하이닉스 효과’

《 기업의 투자는 고용을 늘리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다. SK하이닉스가 대표적 사례다. 최근 SK하이닉스가 46조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밝힌 뒤 SK하이닉스 이천공장 주변 상인들은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부동산 가격이 뛰고 전통시장도 활력을 찾고 있다. 매년 조 단위로 투자 고용을 늘리는 만큼 SK하이닉스는 이 지역의 최고 ‘효자 기업’으로 손꼽힌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달성한 덕분에 올해 이천시에 납부할 지방세만도 800억여 원에 이른다. 이는 올해 이천시 예산의 15% 수준이다. 》

“조금이 아닙니다. 죽어가던 이천 경제가 살아나고 있습니다. 상인들한테 물어보세요. 지난해보다 두 자릿수로 매출이 늘었습니다. 전통시장도 숨통이 트이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의 대규모 투자로 지역 경제가 조금 나아졌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경기 이천 소기업소상공인연합회 이병덕 회장(55)은 손사래를 치며 이처럼 말했다. 그는 “이천시에서 가장 큰 기업이 SK하이닉스인데 이 회사가 없으면 이천 경제는 마비된다. SK하이닉스가 매년 조 단위로 투자해 고용을 늘려주니 시민들이 최고의 ‘효자 기업’으로 꼽는다”고 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5일 이천시에 총 15조 원이 투자되는 차세대 D램 생산라인인 ‘M14’ 반도체 공장을 준공했다. M14 외에도 2024년까지 이천시에 15조5000억 원을 투자해 반도체 생산라인을 하나 더 구축할 계획이다. 서울대 경제연구소는 M14에 대한 투자가 지역경제에 5조1000억 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5만9000명의 고용창출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분석했다.

기자는 9일 현장을 찾았다. 이 회장을 만났던 이천시청 별관에서 승용차를 타고 10분 정도 달리자 SK 행복날개를 형상화한 SK하이닉스 정문이 나왔다.

○ 꿈틀거리는 이천 상권

정오 무렵 사원증을 목에 건 SK하이닉스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이들이 향한 곳은 도로 바로 맞은편에 있는 상가. 약 50개의 음식점과 생활편의시설로 구성돼 있는 이 상가는 시내와 떨어져 있어 전적으로 1만3000여 명의 SK하이닉스 직원들에게 의존했다.

음식점마다 손님들로 북적였다. 한우전문점을 운영 중인 김형식 씨는 “SK하이닉스의 투자로 앞으로 상가 경기가 더 활성화될 것이란 기대감이 무척 크다”고 말했다. “젊은층이 좋아하는 스타벅스 같은 카페가 최근 몇 년 사이 이 상가에 들어선 것도 그런 기대감 덕분”이라고 귀띔했다.

음식점 옆 주차 공간에는 예외 없이 차량들이 빼곡히 주차돼 있었다. 상가와 바로 이어진 공영주차장에 빈자리가 없어 기자는 걸어서 5분 정도 떨어진 주차장에 차를 주차해야만 했다.

SK하이닉스 정문에서 시내 방향으로 약 5분을 달리자 타워크레인 6대가 멀리서도 한눈에 보였다. 롯데건설이 49층 높이의 주상복합아파트를 짓기 위해 한창 기반공사를 하고 있었다. 인근에 있는 ‘이천IT공인중개사’에 들렀다. 윤태선 대표는 “4월에 전용면적 84m² 총 736채의 아파트를 분양했는데 ‘완판’됐다”며 “이천 부동산 가격 상승률이 전국에서 톱3 안에 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우선 SK하이닉스 투자에 대한 기대감이 크고 성남∼이천∼여주 복선전철사업, 지속적인 인구 유입 등 호재가 맞물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천시 지체장애인협회가 지난달 SK하이닉스 이천공장 정문 앞 상가에 온누리상품권 기부에 감사하는 뜻을 담은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천시 지체장애인협회 제공
이천시 지체장애인협회가 지난달 SK하이닉스 이천공장 정문 앞 상가에 온누리상품권 기부에 감사하는 뜻을 담은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천시 지체장애인협회 제공
○ 전통시장도 숨통 트여

이천시내 한가운데 ‘관고전통시장’이란 간판이 보였다. 채소를 좌판에 내놓고 손님을 끌던 식료품점 ‘어머니 구판장’에 들어가 봤다.

김진창 씨는 양손이 절단된 지체장애인이었다. 그는 지난해 7월 16m² 남짓한 현 가게를 3000만 원에 인수하면서 채소 장사를 시작했다. 직원 1명을 고용해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야채를 사와 팔았지만 처음 해보는 장사여서 시든 야채를 버리기 일쑤였다. 전통시장을 방문하는 손님도 통 없었다. 직원 1명의 인건비조차 벌 수가 없었기에 그는 가게를 포기하려 했다.

쓰러지던 그를 붙잡아 준 것은 온누리상품권(전통시장 이용권)이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설 명절 때 약 46억 원어치의 온누리상품권을 구매해 4월경 이천시에 15억 원어치를 기부했다. 나머지 금액도 대부분 지역사회 장애인 복지시설에 기부했다. 그 후 이천에 있는 장애인 복지시설 약 30곳이 어머니 구판장에 물품 배달을 의뢰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 씨는 “7월과 8월은 정신이 없었다. 두 달 동안 약 7000만 원어치를 팔았다. 그 덕분에 종잣돈을 마련할 수 있었고 지금은 직원 2명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천시 지체장애인협회는 협회 운영비를 털어 지난달 SK하이닉스 정문 앞과 시내 2곳에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SK하이닉스 감사드립니다. 온누리상품권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는 내용이었다. 현재 관고전통시장에는 ‘온누리상품권을 환영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 지자체와도 윈윈 협력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17조1260억 원)과 영업이익(5조1090억 원)을 달성했다. 올해 이천시에 납부할 지방세는 약 800억 원. 이는 2015년 이천시의 연간 예산 5432억 원의 14.7%에 해당한다.

조병돈 이천시장은 “이천시는 SK하이닉스 M14 공장 준공을 계기로 지역 발전의 커다란 전환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SK하이닉스는 이천공장을 대규모로 증설하면서 건설근로자, 자재, 장비 등을 분야별로 최소 69%에서 88%까지 지역 업체와 인력을 활용했다. 이천 경제가 큰 활력을 얻었고 그동안 SK하이닉스가 낸 지방세 덕분에 이천시 재정도 탄탄해졌다”고 했다.

이천시는 SK하이닉스의 원활한 기업활동을 위해 무엇이든 지원할 태세다. 실제 SK하이닉스가 2006년 이천공장 증설을 추진했을 때 이천시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중앙부처와 환경부에 지속적으로 규제 완화를 건의했다. 지금도 기업 관련 민원을 전담하는 조직인 ‘기업 SOS팀’을 구성해 운영 중이다.

강유종 SK하이닉스 경영전략실장은 “결국 기업의 성장이 지역민 복지를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지속 성장을 통해 투자와 고용을 만들어내고 지역 경제를 발전시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작년보다 투자 1조 늘려… ‘최태원 효과’ ▼

崔회장 “어려울때 기업이 나서야”


투자 약 15조 원, 고용(신입, 경력 포함) 8000명.

SK그룹이 올해 실시할 투자와 고용 규모다. 지난달 초만 해도 SK는 그룹 차원의 투자와 고용 수치를 확정짓지 못했다. 당시 SK 고위 관계자는 “투자는 지난해(약 14조 원)만큼 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고용은 작년(8000명)보다 줄어든 7000명 정도 될 것 같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한 달 만에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투자는 지난해보다 1조 원 늘렸고 고용도 연초 계획인 7000명보다 1000명을 늘려 잡았다. 더구나 이번에는 구체적 숫자까지 밝혔다. 투자와 고용은 경영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 기업들은 언론에 구체적 숫자를 내놓기를 꺼린다.

이 같은 SK의 변화는 ‘최태원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SK그룹 최 회장은 2년 7개월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지난달 14일 광복절 특사로 출소했다. 그는 지난달 17일 주요 계열사 사장이 참석한 확대경영회의를 열고 “어려울 때 기업이 앞장서서 투자와 고용을 확대하고, 조기에 집행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그 후 SK그룹은 일사천리로 투자와 고용 확대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SK 관계자는 “경영 상황이 워낙 안 좋기 때문에 당초 투자와 고용은 매우 보수적으로 잡았지만 최 회장의 의지를 반영하면서 큰 폭으로 확대됐다”고 말했다.

투자의 경우 SK하이닉스에 대한 46조 원 투자(2024년까지 이천 M14 공장에 15조 원, 이천 및 청주 공장 신규 증설에 31조 원)를 지난달에 이미 밝혔다. 조만간 에너지, 화학, 정보통신 분야 계열사도 투자 규모를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은 대부분 계열사가 연초 계획보다 늘려 잡았다. 대졸 신입사원 채용 계획이 아예 없었던 SK이노베이션 등 일부 계열사는 이번 하반기에 공채를 실시하기로 했다. 올해 하반기 대졸 신입사원 채용은 1500명으로 지난해(1300명)보다 15% 늘어났다.

이천=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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