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혁신 DNA 심는다/대한민국 공기업, 혁신노력 현장]
유사중복사업 기능 재편 추진 뼈깎는 구조조정도 불사
독점 사업에 안주하지 않고 신성장·고난도사업에 과감한 투자
성과연봉제 전직원 확대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 조성
“공공기관들은 그동안 적지 않은 개혁을 이뤄 냈습니다. 하지만 성과연봉제 확대 등 혁신을 위한 중요한 과제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공공기관 기관장 워크숍에서 공공기관 혁신을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장기화되고 있는 저성장의 악순환을 끊고 민간 부문 구조개혁에 힘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공기관의 혁신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혁신 유전자(DNA)로 무장한 공공기관들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 ‘철밥통’에 비유되며 현실에 안주한다는 지적을 받아 온 공공기관들이 최근에는 구조개혁과 경제 활성화의 선봉장으로 나서며 혁신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그동안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민간 기업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 혁신적인 공공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만 경영 ‘다이어트’ 성공한 공공기관
323개 공공기관은 박근혜 정부 출범 후 공공기관 정상화 방안에 따라 방만 경영의 군살을 빼고 부채를 감축하는 강력한 개혁에 나섰다. 그 결과 자산 대비 부채비율이 2012년 말 기준 220%에서 2014년 말 202%로 낮아졌다. 부채 규모도 2013년 521조 원에서 2014년 520조5000억 원으로 2007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세에 들어섰다.
유사 중복 사업에 대한 기능 재편 작업도 적극적으로 추진됐다. 이를 위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중대형 분양주택 사업, 한국감정원의 감정평가 업무 등 민간 분야와 중첩되는 사업을 과감히 포기했다. 그 대신 한국도로공사의 재난안전처 신설, LH의 주거복지 서비스 강화 등 꼭 필요한 핵심 기능은 강화하며 대국민 서비스를 위한 혁신을 단행했다. 지난해에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혁신의 주요 과제로 삼았다. 그 결과 모든 공공기관이 정부 권고안에 따라 임금피크제를 채택했고 2017년까지 약 8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게 됐다.
정부는 이 같은 공공기관의 혁신이 민간에 모범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가 직접 관리 감독하는 공기업들이 뼈를 깎는 개혁에 나서는 만큼, 민간도 생존을 위해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낄 것이라는 판단이다. 정부 관계자는 “공공기관의 혁신은 민간 부문의 개혁을 위한 초석”이라며 “공공기관들이 혁신을 통해 국민들에게 보다 양질의 공공 서비스로 보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 확대로 경기 활성화 앞장서
공공기관의 혁신은 올해 더욱 강해진다. 투자 확대는 혁신의 시작이다. 과거 정부의 허가로 독점 사업을 영위하며 ‘땅 짚고 헤엄치기’를 하는 것만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게 공공기관과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신성장동력으로 삼아야 할 투자와 민간이 도전하기 어려운 투자에 공공기관이 앞장서야 한다고 주문한다.
대표적인 혁신 투자에 나선 공공기관은 한국전력이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21조 원의 부채를 감축하며 얻은 동력을 바탕으로 에너지 신(新)산업 분야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올 4분기(10∼12월)에 2조 원 규모의 ‘KEPCO 키움 펀드’(가칭)를 내놔 에너지산업 분야에 한전이 선도적으로 투자를 한다. 또 올해 2000억 원을 투자해 민간 사업자와 공동 이용이 가능한 전기차 충전소 20곳을 건설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우리 식품의 한류(韓流) 몰이에 적극 나서고 있다. 2014년 10월 세계 최대 온라인 업체인 알리바바를 통해 중국 시장에 진출한 것 등의 성과를 토대로 지난해 3150억 원의 수출 매출을 거뒀다. 2014년 한 해에만 부채 5000억 원을 줄인 한국수자원공사는 지난해 대구에서 열린 ‘세계 7차 물포럼’을 계기로 라오스 인프라 시장 등에 진출하며 적극적인 해외 투자에 시동을 걸었다.
LH는 지난해 사업비를 당초 계획보다 5600억 원 늘렸다. 2년 만에 14조 원의 금융부채를 줄이며 경영 사정이 개선되면서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 기업형 임대주택(뉴스테이) 택지 공급, 행복주택 건립 등 정부와 함께 추진하는 주거복지 사업은 물론이고 인도 스마트시티 사업 등 해외 진출에도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게 됐다. 성과연봉제 도입으로 혁신 박차
올해 정부와 공공기관이 추진하는 혁신의 또 다른 축은 성과연봉제 확대다. 업무 실적과 상관없이 연공서열에 맞춰 월급이 지급되다 보니 일을 열심히 할 근본적인 동기부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국내 300인 이상 기업의 79.9%가 능력 및 성과와 무관하게 나이에 따라 임금이 상승하는 연공급형 임금체계를 채택하고 있다.
공공기관이 선도적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해 잘 정착시킬 경우, 공공 부문은 물론이고 민간 부문의 노동 개혁과 혁신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유 부총리는 “호봉제 임금체계는 선진국에서 찾기 힘든 갈라파고스 제도이고, 이런 임금체계로는 국제 경쟁력을 키울 수 없다”며 “업무성과에 따라 공정한 보상과 대우가 이뤄지고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국민에 대한 양질의 서비스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과연봉제는 방만 경영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도입한 임금피크제에 이은 또 다른 혁신 과제다. 지난해 모든 공공기관이 정부 권고안에 따라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며 약 8000명의 청년을 추가로 고용할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됐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보수를 주겠다는 취지로 일하는 분위기 조성에 따른 성과 중심 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정부는 2010년 도입한 간부직 중심의 성과연봉제를 토대로 전 직원의 70%에게 성과연봉제를 적용할 방침이다. 현행 2%포인트인 기본급 인상률 차등 수준을 3%포인트까지 높이고 최저 등급과 최고 등급의 급여 차등폭을 최대 2배로 넓힐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연봉 인상액은 최대 320만 원, 성과연봉은 최대 2000만 원까지 차이가 벌어지게 된다. 기재부는 성과연봉제를 확대한 공공기관에 대해 경영평가 가산점을 부여한다. 또 5월 말까지 조기에 도입한 기관에 대해서는 올해 말 추가 성과급을 지급할 예정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일하는 분위기 조성을 통한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위해 성과연봉제를 비롯한 다양한 혁신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며 “생산성을 높여 국민 기대에 부응하는 공공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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