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가 발굴하고 삼성이 투자… 기술 갖춘 벤처와 팀플레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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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꿈꾸는 혁신성장/2부 한국형 혁신기업 키우자]
대기업-스타트업 환상의 짝꿍

삼성전자가 2012년 시작한 사내 벤처 프로그램 C-랩은 스타트업 32곳을 탄생시켰다. 삼성전자 수원 디지털시티 안에 위치한 C-랩 전용공간에서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나누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가 2012년 시작한 사내 벤처 프로그램 C-랩은 스타트업 32곳을 탄생시켰다. 삼성전자 수원 디지털시티 안에 위치한 C-랩 전용공간에서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나누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 롯데슈퍼 등 롯데그룹 유통 계열사에서는 간편결제 서비스인 엘페이(L.pay)가 쓰인다. 여기에는 불과 5년 차인 신생 스타트업 ‘모비두’의 기술이 적용됐다. 모비두는 사람이 듣지 못하는 음파를 통해 스마트폰과 결제 데이터를 주고받는 혁신 기술을 개발해냈다. 모비두는 엘페이 서비스 이력을 밑천으로 해외 진출도 타진하고 있다.

‘모비두’가 짧은 시간 급성장하기까지 롯데그룹은 강력한 우군 역할을 했다. 모비두는 롯데액셀러레이터로부터 창업자금을 지원받고 경영컨설팅까지 받았다. 롯데멤버스는 삼성전자 스타트업 투자 자회사인 삼성넥스트, 캡스톤파트너스 등과 함께 모비두에 15억 원을 투자했고, 전국의 롯데 유통 계열사에 모비두 기술 탑재 서비스를 시작했다.

롯데액셀러레이터는 창업지원금을 지원하고, 경영컨설팅 멘토링 등을 제공해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다. 또 롯데그룹 계열사와 사업 제휴
 등이 가능하도록 지원한다. 사진은 롯데액셀러레이터 사무공간에 입주한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일하는 모습. 롯데액셀러레이터 제공
롯데액셀러레이터는 창업지원금을 지원하고, 경영컨설팅 멘토링 등을 제공해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다. 또 롯데그룹 계열사와 사업 제휴 등이 가능하도록 지원한다. 사진은 롯데액셀러레이터 사무공간에 입주한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일하는 모습. 롯데액셀러레이터 제공
양사 협력은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각자 역량을 결합해 윈윈(win-win)했다는 측면에서 ‘한국형 혁신 생태계’ 모범 사례로 꼽을 만하다. 모비두는 자금뿐 아니라 유통망, 해외 네트워크 등 대기업이 지닌 역량을 활용했고, 롯데그룹도 모비두 혁신 기술을 활용해 소비자들의 결제 편의성을 높였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구글, 아마존 등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은 핵심 기술을 자체 개발하기보다 해당 분야 핵심 플랫폼과 기술을 보유한 업체들과 협업 및 인수합병(M&A)을 통해 경쟁력을 높인다. 미래 성장 동력을 두고 고심하는 국내 대기업과 스타트업도 ‘개방적 혁신’을 통한 한국형 생태계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산업계 안팎에서는 대기업 주도 성장으로 커온 한국 경제 성장전략의 본질적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산업 간 장벽이 무너지며 혁신 사업이 쏟아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기업은 새로운 시장 모두를 내부 연구개발(R&D)로 해결하기에는 비용이나 속도 측면에서 역부족이다.

국내 대기업들은 이미 △M&A 및 인재 영입을 위한 투자회사나 △스타트업 창업자금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액셀러레이터를 운영하거나 △아이디어 개발부터 팀 구성 단계까지 지원하는 컴퍼니빌더와 제휴하는 방식으로 스타트업과 손잡고 있다.

삼성전자는 삼성벤처투자, 삼성넥스트, 삼성카탈리스트펀드 등을 통해 기술 개발과 인재 영입을 위해 스타트업에 전략적 투자를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2년부터 사내 벤처 프로그램 C-랩도 운영한다.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임직원들은 일정 기간 현업에서 벗어나 스타트업처럼 일할 수 있다. 그간 총 195개 프로젝트를 통해 스타트업 32곳이 탄생했다. 성과도 적지 않다. 산업 건축용 진공 단열 패널을 설계·생산하는 ‘에임트’는 40억 원 규모의 해외 투자를 유치했고, 허밍으로 작곡하는 앱을 개발하는 ‘쿨잼컴퍼니’는 최근 세계 3대 음악 박람회 ‘미뎀랩 2017’에서 우승했다.

현대자동차, SK, LG, GS, 한화, 두산, 아모레퍼시픽, 네이버, 카카오 등도 고유 사업 노하우와 인적, 물적 인프라를 동원해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있다. SK텔레콤은 2013년부터 ‘SK 브라보 리스타트’를 통해 예비창업자나 설립 5년 미만 기업에 2000만 원과 입주 공간 등을 제공한다. 한화그룹은 2014년부터 ‘드림플러스’라는 이름으로 ICT 스타트업을 육성하기 위한 사업을 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아예 국내 스타트업 육성 경험이 풍부한 액셀러레이터 퓨처플레이와 손을 잡고 생태계 구축에 나섰다. 지난해 ‘테크업플러스’라는 이름으로 총 5곳의 스타트업을 선발했다. 아모레퍼시픽 사업과 관련성이 큰 뷰티 및 헬스케어 분야에서 회사 측이 원하는 기능 및 제품을 개발하는 스타트업과 인재를 직접 키워보겠다는 전략이다.

국내 1세대 바이오 벤처기업으로 꼽히는 정밀의학 유전체 분석기업인 ‘마크로젠’은 성장 가능성이 높은 사업부를 키워 또 다른 벤처기업을 만들고 있다. 2016년 마크로젠에서 분사한 ‘쓰리빌리언’은 키트에 침을 뱉어 보내면 한 번의 검사로 4주 안에 4000종 이상의 유전성 희귀질환 유전자 보유 여부를 알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해 미국에 진출했다. 마크로젠 관계자는 “분사는 회사 기술을 갖고 완전히 나가게 하는 게 아니라, 지분 확보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이민화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은 “효율에 강한 대기업, 혁신에 강한 벤처 생태계가 결합해 시너지를 내야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며 “대기업이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지원하는 것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M&A에 뛰어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 액셀러레이터 ::

경쟁적 방식으로 스타트업을 선발해 3∼6개월 동안 초기 창업자금과 멘토링 및 육성 프로그램 등을 지원하는 사람이나 기업. 일종의 창업 기획자.

:: 컴퍼니빌더 ::

창업 아이디어 선정 및 팀 구성, 사업모델 구체화 등 초기 단계부터 참여해 스타트업을 양성하는 기업. 보통 스타트업을 성장시킨 뒤 지주회사로 남는다.

서동일 dong@donga.com·박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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