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2018 동아 이코노미 서밋: 다함께 꿈꾸는 혁신성장’에 참석한 스타트업 대표들은 “대기업이 스타트업 성장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절감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토론자들은 “한국 상황에 맞는 혁신전략을 찾아야 한다”며 “한국 경제 최대 강점인 대기업의 혁신 역량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대기업에서 분사했거나 투자 등을 받은 솔티드벤처, 마인즈랩, 리얼리티리플렉션, 링크플로우 등 4개 스타트업 대표들이 각사 성장 과정을 발표했다. 삼성전자 연구원 출신으로 스마트 웨어러블 기기업체 솔티드벤처를 창업한 조형진 대표는 삼성전자 사내 벤처 프로그램 C-Lab(Creative Lab)에서 창업을 준비했다. 그는 “창업에 실패해도 회사에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없었다면 선뜻 창업에 나설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지원으로 위기를 넘겨 성장세를 이어간 기업도 있다. SK텔레콤 투자를 받은 리얼리티리플렉션이 대표적이다. 가상현실(VR)용으로 쓰이는 사실적인 인물 캐릭터를 만들며 아시아 최대의 3차원(3D) 스캐닝 스튜디오를 보유하고 있을 만큼 기술력에 자신 있었지만 VR 시장 정체로 생존을 걱정할 정도가 됐다.
하지만 미래 사업 분야를 찾는 SK텔레콤의 관심사와 맞아떨어져 SK텔레콤이 투자를 했고 기술 협업을 통해 새로운 사업 가능성을 제시했다. 바로 SK텔레콤 인공지능(AI) 스피커의 미래형 모델에 홀로그램 캐릭터를 적용하는 것. 양사는 홀로그램 캐릭터를 만들어 시제품을 세계 최대 모바일 박람회인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 함께 출품했다. 그 덕분에 이 회사는 글로벌 업체들로부터도 러브콜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 회사의 손우람 대표는 “SK텔레콤이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해줘 앞만 보고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기업 때문에 위기를 겪기도 하고 기회를 잡기도 한 스타트업도 있었다. 기업용 AI플랫폼을 공급하는 마인즈랩 유태준 대표는 “사업 초기 기술에 관심을 보인 한 식품회사에 2시간 넘게 관련 기술을 브리핑했는데, 나중에 따로 인력을 동원해 비슷한 기술을 만든 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전형적인 기술탈취 사례였다.
동시에 이 회사는 LG유플러스와 고객 응대 및 AI 스피커용 콘텐츠 개발 분야에서 협력하고 KEB하나은행과 KDB산업은행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으며 사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유 대표는 “필요한 기술을 전문 기업에서 구입하려는 움직임이 많아지는 것은 스타트업에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웨어러블 360도 카메라를 개발하는 링크플로우는 롯데그룹과 협력을 이어가며 대기업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김용국 링크플로우 대표는 “처음에는 대기업에서 투자받고 제품 유통 정도만 도움 받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롯데 계열사와 협력 분야가 점차 늘어났다”고 전했다. 그는 롯데하이마트를 통해 제품을 유통하고 캐논코리아를 통해 제품 제조를, 롯데첨단소재를 통해 소재 공급을 도움 받았다. 또 롯데상사의 도움으로 해외 박람회 등에도 나가 일본과 필리핀 등에도 제품을 수출했다. 이 회사는 대기업 네트워크를 통해 거액을 투자받기도 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글로벌 IT 업체에 링크플로우를 소개해줬고, 추가로 이들로부터 대규모의 투자를 유치하게 됐다.
종합토론 시간에는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 혁신생태계 조성을 위한 방안이 논의됐다. 석종훈 중소벤처기업부 창업벤처혁신실장은 “국내 투자가 신생 회사에 쏠려 있다”며 “창업 초기 회사가 투자받기는 쉬운데, 이후 성장하는 ‘스케일업’ 단계에서는 투자가 많지 않다는 게 정부의 고민”이라고 말했다. 김도현 국민대 글로벌 창업벤처대학원장은 “한국에서 기업이 성장하기만 하면 ‘독점’이라거나 ‘지나친 이익을 얻고 있다’는 식으로 공격을 받아 규모가 커진 기업이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의 비상장 신생기업)’으로 성장하는 데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대기업 임원들 사이에 만연한 단기 성과주의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마인즈랩 유 대표는 토론에서 “사람만 금융상품을 판매할 수 있게 돼 있는 법률 때문에 로보어드바이저 개발업체가 상용화를 못 해 지난해 11월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읍소했었는데 여전히 개선이 안 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미국은 지식재산권 분쟁이 일어나 패소하면 손해가 어마어마해 분쟁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기업을 사들이는데, 한국은 작은 기업이 승소할 가능성도 적고 배상액도 적어서 대기업의 스타트업 인수가 활발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진성 롯데액셀러레이터 대표는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해 대기업 집단에 들어오는 순간 ‘일감 몰아주기’ 규제로 도와주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며 “대기업의 스타트업 인수에 대한 특례 조항이 있다면 대기업이 더 적극적으로 스타트업 인수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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