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VIP룸’ 개설로 구속된 조폭의 동업자가 밝힌 실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3일 03시 00분


“유명 개그맨에도 도박자금 빌려줘… 발뺌 못하게 동영상 찍어”

“마카오 현지에서 도박 자금을 빌려줄 땐 나중에 발뺌하지 못하도록 동영상을 찍었고, 그중에는 유명 개그맨과 중견기업 오너 일가도 있다.”

마카오 카지노에 도박장을 차린 혐의로 구속 기소된 옛 광주송정리파 조직원 이모 씨(41)의 측근 A 씨는 22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씨가 관리하던 주요 고객 중 아직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 많다”며 이같이 털어놨다. A 씨는 3년간 마카오 카지노 에이전트로 일했다. 그는 이 씨가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회장(50·구속 기소), 문식 켄오스해운 대표(56·구속) 등 유명 기업인들의 해외 원정 도박을 알선해온 과정을 생생히 전했다.

A 씨에 따르면 이 씨는 정 회장과 문 대표 외에도 중견기업 대표의 아들 등 고객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장부를 관리해 왔다. 특히 현지에서 도박 빚(일명 ‘빽’)을 내줄 땐 차용증에 지장을 찍게 하고 동영상까지 촬영해 놓았다고 한다. A 씨는 “개그맨 B 씨는 5억 원을 빌렸다가 2억 원을 갚지 못해 이 씨 동업자들이 찾아가 빚 독촉을 하기도 했다”고 했다. A 씨는 해외에 진출한 도박업자 대부분이 폭력조직과 연계된 이유에 대해 “조직원들을 이용하면 빌린 돈을 갚지 않는 고객을 찾아내기 용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A 씨 주장대로 이 씨가 고객 장부와 동영상을 관리해 왔고 이를 검찰에 제출했다면 검찰 수사가 크게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검찰도 “이 씨를 일단 기소했지만 아직 수사가 다 끝난 게 아니다”라고 밝혀 추가 연루자가 있음을 시사했다. 이 씨는 지난달 22일 마카오에서 귀국해 인천공항에서 체포됐으며, 검찰은 그의 휴대전화에서 동영상과 문자메시지 등을 복원해 수사 단서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씨는 2010년경 6억여 원을 들고 마카오에 진출한 뒤 2, 3년 만에 급성장했다. 비결은 독특한 마케팅 전략이었다. 이 씨는 사업 초기 현지 도박 낭인(일명 ‘마카오 앵벌이’) 수십 명에게 1인당 500만 원씩을 그냥 나눠주며 “잃어도 갚을 필요 없고, 따면 원금만 돌려 달라”고 해 단기간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A 씨는 “이 씨가 현지 물정에 밝고 도박 인맥이 넓은 ‘앵벌이’들 사이에서 ‘돈 많고 통 큰 업자’로 입소문이 나면서 고객도 많아졌다”고 전했다. 이후 이 씨는 카지노 VIP룸을 빌려 도박을 주선한 뒤 카지노와 수익을 나누는 ‘정킷방’을 운영하며 승승장구했다. 초기엔 고객의 돈을 칩으로 교환해줄 때 생기는 롤링비(수수료) 1∼1.2%를 주 수입원으로 삼다가 2013년경엔 극소수의 에이전트만 한다는 ‘셰어 정킷’(고객이 잃은 돈의 30∼40%를 챙기는 정킷방)까지 차릴 정도로 성장했다.

A 씨는 마카오의 도박 에이전트 중 일부가 불법 환전(환치기)을 통해 국내 유력 인사들의 ‘검은돈’ 세탁을 돕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한국에서 환전 브로커에게 현금을 건네면 해외 환전상이 이를 홍콩달러 등으로 바꿔 현지에서 되돌려주는 방식이다. A 씨는 “환치기로 만든 검은돈을 카지노에 넣어두면 이자는 없지만 거래 명세나 환전 사실 등이 적발될 위험이 없고 예치자의 신분 또한 확실히 비밀 보장이 된다”며 마카오 도박장을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금고’라고 표현했다.

A 씨는 또 “고객이 돈을 잃어야 정킷방 운영자와 에이전트가 돈을 벌 것이라는 통념은 잘못됐다”며 “고객이 돈을 따서 계속 칩을 교환해야 수수료를 벌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박 자금을 탕진하고 현지에서 ‘빽’까지 쓰게 되면 본격적으로 국내 폭력조직의 빚 독촉과 수사기관의 추적을 받게 된다는 게 A 씨의 설명이다.

해외 원정 도박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심재철)는 22일 건물·도로관리업체 H사 한모 회장(65)과 투자자문사 조모 대표(44)에 대해 베트남 등지에서 각각 35억 원과 20억 원대 도박을 한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에 따라 현재까지 원정 도박 혐의를 받는 기업인은 모두 7명으로 늘어났다. 재판에 넘겨진 정운호 회장과 폐기물처리업체 임모 대표는 도박 혐의 자금이 각각 101억 원과 45억 원이며, 문식 대표는 190억 원대에 이른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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