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형 인재 요람을 가다]<하> 대학-기업 연계 ‘시스템’으로 키운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7일 03시 00분


MIT 기업가정신센터 기업이 캠퍼스서 기업가 육성


교수가 아닌 현직경영인이 직접 강의
수업 없을땐 학생들에게 창업 조언
10만달러 상금 사업계획 경진대회도
1970년대 이후 졸업생들 창업 붐
전세계서 2만5800개 기업 활동 중



미국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에 있는 매사추세츠공대(MIT) 캠퍼스 곳곳에선 요즘 다음과 같은 공고문이 자주 눈에 띈다. “오바마는 ‘하버드 로 리뷰(Harvard Law Review)’ 출신입니다. 오바마가 이 리뷰 덕에 어떻게 바뀌었는지 보세요. ‘MIT 기업가정신 리뷰(MIT Entrepreneurship Review)’에 가입하세요.”

MIT 기업가정신 리뷰는 MIT 재학생 3명이 아이디어를 낸 온라인 미디어다. 내년 2월부터 학생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산업 분야에서 기업가와 벤처 투자자들을 직접 만나 취재한 정보를 온라인에 올릴 계획이다.

MIT 기업가정신센터의 호세 파셰코 프로그램 매니저는 “MIT 기업가정신 리뷰에 초기 자본금 1만5000달러와 기업 연락처 등을 지원하고 있다”며 “의욕 있는 학생들을 저명한 기업에 소개하는 역할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MIT는 이처럼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진 인재들의 활동을 지원하면서 기업들을 캠퍼스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대학 캠퍼스가 실제 기업을 키워내는 인큐베이터이자 시험장이 되도록 생태계를 조성해주는 것이다. MIT 기업가정신센터도 이를 위한 조직의 하나다. 이 센터는 교수가 아니라 현장의 기업인이 직접 강단에 서는 강좌를 열고 있다.

○ 기업을 캠퍼스로 끌어 들인다

“당신은 막 새로운 미디어 기업을 시작하려는 참에 실리콘밸리의 저명한 벤처캐피털에서 투자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다만 한 달간 검토한 뒤 계약을 하겠다고 합니다. 당신이 제안에 동의했는데 일주일 뒤 다른 대기업에서 지금 당장 투자하겠다는 제안을 받았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난달 18일 MIT 기업가정신센터의 경영학석사(MBA) 강좌인 ‘신생 기업(New Enterprises)’ 강의에서 나온 질문이다. 강사인 기업 솔루션업체 시트릭스시스템스의 피터 레빈 부사장이 직간접으로 경험한 내용이다. 학생들이 다양한 의견을 내놓자 레빈 부사장은 “이럴 때 중요한 점은 이미 당신이 약속을 했다는 점”이라며 “약속을 어기면 벤처캐피털 업계에서 평판이 금세 나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2시간가량 이어진 수업이 끝나자 레빈 부사장 주변에 질문을 하려는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수업은 레빈 부사장의 멘터링 시간인 셈이었다.

MIT 기업가정신센터는 이같이 생활과학 정보기술(IT) 청정에너지 등 학생들의 관심이 많은 산업 분야에서 기업가 6명을 초빙해 ‘주재 기업인(Entrepreneur in Residence)’이라는 역할을 부여했다. 이들은 한 학기 동안 강의를 하면서 수업이 없을 때는 학생들의 창업에 대해 조언한다. 학생들이 기업과 밀도 있는 스킨십을 하도록 마련한 제도다.

○ 기업-대학의 축제, 경진대회

매년 MIT가 주최하는 ‘MIT 100K달러 사업 계획 경진대회’는 벤처 기업가를 꿈꾸는 학생과 젊은 아이디어를 구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만남의 장이다. MIT 학생을 중심으로 팀을 이뤄 10만 달러의 상금을 걸고 창업계획서를 만들어 낸다. 경진대회에 나왔던 사업 아이템으로 지금까지 120여 개의 회사가 실제 설립됐다.

MIT 100K달러 사업 계획 경진대회는 뜨거운 반응에 따라 글로벌 버전도 낳았다. 매년 세계 각국에서 ‘MIT 100K달러 글로벌 창업 워크숍’이 열리고 있다.

창업 경쟁에 참여한 MIT 슬론 스쿨의 학생 크레드 킨더 씨는 “이번 경진대회는 다양한 분야의 회사들을 직접 만나 조언을 듣고 투자자를 찾는 법을 배우면서 법률 상담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나이 들었을 때 내가 한때 기업을 세워 본 적이 있다고 뿌듯하게 돌이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 혁신형 인재들의 힘

MIT에서는 1970년대 이후 졸업생들의 창업 붐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엔 기업과 대학을 연결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밑거름이 됐다. 기업과 학교를 연결한 건강한 생태계에서 기업가정신과 창의력을 동시에 갖춘 ‘혁신형 인재’로 자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자란 인재들은 세계 경제에서 이미 자신의 역할을 든든히 해 나가고 있다. 세계적으로 MIT 출신이 설립한 기업 가운데 현재 활동 중인 곳은 약 2만5800개에 이른다. 이들은 약 330만 명을 고용하고 연간 2조 달러(약 2300조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미국 내에서도 젊은 벤처 기업가들이 많이 몰려 있는 매사추세츠 주에선 MIT 출신 혁신형 인재들이 지역 경제의 엔진 역할도 하고 있다. MIT 졸업생이 세운 회사 가운데 약 6900개가 매사추세츠 주에 본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 전체 기업 매출의 약 26%를 담당하고 있다.

케임브리지=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찾아라, 혁신형 인재” 눈에 불켠 국내외 기업

SK텔레콤-삼성전자-인텔
MIT-UC버클리 연구 후원
새 아이디어 발굴 창구로


지난달 17일 오후 매사추세츠공대(MIT) 기업가정신센터 방문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한 학생이 기자 앞에 오더니 “내가 참여하고 있는 MIT 100K달러 사업 계획 경진대회에 한국 기업인 SK텔레콤이 후원을 시작했다”며 말을 건넸다. 한국에서 온 기자라는 사실을 알고 반가워서 한 말이었다.

SK텔레콤은 올해 처음 이 대회의 ‘모바일 부문’에 2만5000달러를 후원했다. 대회에는 멀티스크린 게임,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이용한 상품위치 알림서비스, 문자메시지(SMS) 쿠폰 서비스 등 모바일과 관련된 사업 아이템이 다수 나왔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신규 사업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한 채널 가운데 하나로 대회 후원을 시작했다”며 “후원 기업은 대회를 참관하면서 학생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많이 접할 수 있어 미국의 ‘핫 트렌드’를 빨리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MIT 캠퍼스를 둘러보다가 첨단 분위기가 풍기는 디자인의 건물로 들어섰다. ‘상상력 발전소’로 불리는 MIT 미디어렙이었다. 한쪽 벽에 적힌 글로벌 스폰서 기업들의 이름 가운데 삼성전자가 눈에 띄었다. 삼성전자는 6년 전 미디어렙과 미래 신기술 개발을 위해 공동연구 파트너십 협약을 맺고 5년간 375만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SK텔레콤과 삼성전자 외에도 글로벌 기업들은 이처럼 혁신형 인재를 붙잡기 위해 경진대회를 직접 후원하거나 연구를 지원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업체인 인텔은 미국 UC버클리 등과 함께 ‘기술 기업가정신 대회(IBTEC)’를 열고 있다. 올해 행사에선 혁신적인 창업 아이템을 낸 중국 칭화(淸華)대 학생들에게 2만5000달러의 상금이 돌아갔다. 이들은 뼈로 만든 나사를 파는 ‘아이헬스’라는 기업을 구상해냈다. 뼈로 만든 나사는 미생물에 쉽게 분해되는 게 특징이다.

인텔의 앤드루 첸 부사장은 “혁신은 인텔의 성공을 이끈 주춧돌”이라며 “인텔은 세계 경제를 부흥시키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해결법을 키우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대회 개최 취지를 설명했다.

케임브리지=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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