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정확히 예측… 채권의 미래가치에 투자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29일 03시 00분


[투자 고수의 한 수]서준식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CIO

채권펀드매니저 출신으로 올해 3월부터 국내 주식 운용도 총괄하게 된 서준식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부사장은 “고객이 평생 보유하고 싶은 펀드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채권펀드매니저 출신으로 올해 3월부터 국내 주식 운용도 총괄하게 된 서준식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부사장은 “고객이 평생 보유하고 싶은 펀드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인생이 달콤하기만 할 줄 알았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와 미국 템플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고 1994년 삼성생명에 입사하면서 승승장구했기 때문이다. 그가 투자한 종목마다 주가는 올랐다. 대박이 눈에 보이는 듯하자 회사에서 저금리 대출을 받아 개인 투자에도 나섰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1997년 외환위기로 주가가 폭락하며 빚더미에 올라앉으면서 순식간에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졌다. 그의 인생 최대 시련기였다.

서준식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국내운용부문 CIO(최고운용책임자·부사장·49)의 얘기다. 그는 “초기에 주식 투자에서 재미를 본 건 시장이 좋았기 때문이었는데도 내가 잘해서인 줄 알고 기고만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채권 금리는 14%로, 5년이 되면 원금의 두 배가 되는 수준이었는데 대박에 눈이 멀어 보지 못하고 바보짓을 했다”고 고백했다.

서 부사장을 수렁에서 구한 것은 채권 펀드매니저로의 변신이었다. 빚에 시달리던 그는 연봉을 더 받기로 하고 1998년 자회사인 삼성투신운용(현 삼성자산운용)으로 옮겨 채권 운용을 시작했다. 채권 운용은 주식보다 힘들다는 것을 알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때 개인 차원에서 하던 주식 투자도 끊었다. 자산운용사 직원들은 상장 주식의 개인 투자를 금지한 규정 탓이기도 했지만 투자 실패의 교훈이었다. 이후 기대하지 않았던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돈이 불어나는 채권의 복리 효과에 눈을 뜬 것이다. 이후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주창하는 가치투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게 됐고, 2000년대 초반부터는 이를 채권 운용에 적극 적용했다. 이후 그는 성공한 채권 펀드매니저이자 가치투자 전도사로 업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의 채권 가치투자 원리는 단순하다. 일반적으로 금리 인상이 예상되는 경우 시장 흐름을 예측해 투자하는 모멘텀 투자자들은 만기가 짧은 채권을 선호한다.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격이 하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채권의 가치를 평가해 기대수익률이 낮은 채권은 팔고, 기대수익률이 높은 채권은 매입하는 방식을 고집한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뒤엔 법적으로 투자 가능한 비상장 주식 중 채권형 주식을 발굴해 투자하는 방식으로 외환위기 때 입었던 손실도 복구했다. 서 부사장은 “채권은 미래가치가 정확히 확정된 반면 주식은 미래가치를 알 수 없다”면서 “미래가치를 추정할 수 있는 기업은 있게 마련이고 그런 주식이 채권형 주식”이라고 설명했다.

2000년대 초 그가 채권형 주식으로 발굴해 현재도 보유 중인 종목이 한국증권금융㈜. 이 회사는 자기자본이익률(ROE)을 7∼11%대로 유지하는 데다 주가가 청산가치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주당 500원 안팎의 배당도 매력적이었다.

2008년 초 출판된 그의 저서 ‘왜 채권쟁이들이 주식으로 돈을 잘 벌까’는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과거 자신과 같은 투자 실패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뜻을 담았다. 그는 이 책의 개정판을 10월에 낼 예정이다.

그는 올해 3월 국내운용부문 CIO로 승진했다. 국내 주식형 및 채권형, 혼합형펀드를 총괄하는 자리다. 총 운용 자산은 35조 원. 채권운용본부장이 주식까지 총괄하는 CIO로 승진한 것은 이 회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그는 “실제 고객 자산을 운용하는 펀드매니저들의 투자 원칙과 룰을 존중하되 이를 흔들림 없이 지켜 가는지 점검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그는 채권형 주식과 채권을 함께 담아 인컴을 극대화한 혼합형 펀드를 준비하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든 꾸준하게 수익을 내는 절대수익 추구가 목표다. 그는 “투자자들이 부담하는 판매 수수료를 최소화하기 위해 온라인 판매를 우선시할 예정”이라면서 “최근 국내 주식이 역사적으로 저평가된 상황인데도 공모형 펀드 시장은 위축되고 있는데 펀드 시장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 최근 성과만 집착하면 스스로 착시에 빠진 것 ▼

서준식 부사장이 해주는 조언은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왔기에 이론을 넘어서는 정보와 신뢰가 담겨 있다. 특히 과거 자신과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명심해야 할 내용이라며 그가 들려준 내용들은 일반투자자라면 금과옥조처럼 여길 필요가 있어 보였다.


○ 투자 철학을 가져야 한다

그는 탐욕과 공포에 휩쓸리기 쉬운 인간의 본성은 절대 시장을 이길 수 없다고 강조했다. 투자에 성공하려면 결국 자기 나름의 투자 원칙과 룰을 먼저 정립하고 이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다. 펀드 투자에서도 운용 철학이 확실한 펀드를 골라야 한다고 했다. 운용 철학이란 ‘나는 이렇게 돈을 벌겠다’는 내용을 확실하게 얘기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두루뭉술하게 ‘장기 투자를 해서 수익을 내겠다’란 식으로 얘기하는 펀드에 투자해서는 곤란하다는 의미로 들렸다.

○ 철학을 실천하는 뚝심이 필요하다

서 부사장은 “당연한 얘기지만 아무리 투자 철학과 원칙이 훌륭해도 시장 변동에 흔들리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서 “이를 일관되게 밀고 나가는 뚝심이 중요한 이유다”라고 말했다. 이어 “투자 철학과 원칙이 흔들리면 시장을 뒤따라가기 바쁘고, 결국은 큰 손실을 보게 된다”고 경고했다. 마찬가지로 펀드 투자에서도 운용 철학과 다른 방식으로 운용하는 펀드는 경계하라고 거듭 강조했다.

○ 편향을 피하라

그는 “인간에겐 과거 사건이나 관찰 결과보다 최근 것을 훨씬 두드러지게 기억해내는 ‘최근성 편향’이 있다”면서 “펀드 투자에서도 최근성 편향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성과가 좋은 펀드는 앞으로도 좋을 것이라고 착각하기 쉬운데, 이를 피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또 “특히 그동안 좋지 않았던 성과가 최근 들어 갑자기 좋아진 펀드는 반드시 피하고, 대신 꾸준히 좋은 수익률을 내오다 최근 들어 부진에 빠진 펀드는 오히려 매수해 볼 만하다”고 귀띔했다.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자산운용#채권#채권투자#채권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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